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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현장 기반 학습의 중요성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지 성 태 교수



   7월 7일부터 13일까지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서 지원한 ‘대학원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양성사업(이하 ‘전문가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뚜옌꽝성에서 추진한 농촌개발 프로젝트 종료평가를 현지에서 진행하였다. 전문가 양성사업은 올해 처음으로 시도되었고, 1년간 성과관리 및 평가(M&E)에 특화된 총 8학점 이상의 과목을 개설해야 하며, KOICA에서 지정한 사업에 대한 종료평가를 병행해야 한다. 이에 하계 계절수업으로 ‘국제농업개발 성과평가 실습’을 개설하여 종료평가와 실습을 연계하였다.

 

   종료평가에는 지도교수 1인,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석·박사생 10인, 전문가 3인이 참여하였다. 참여한 학생 중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유경험자가 절반을 차지했고, 그 경험의 깊이는 각기 달랐다. 나머지 절반은 관련 현장 경험이 전무하면서 단지 수업을 통해 관련 지식과 이론을 접했을 뿐이다. 따라서 참여 학생별로 실습을 통해 얻었을 학습효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중국농업대학 석사학위과정에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개발협력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중국인 친구가 INGO에 취업하여 학교를 떠났고, 그가 활동하는 중국 허베이(河北)성 장자코우(張家口)시에 위치한 사업지를 여행 차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개발협력은 나와 무관한 영역이라고 생각되어 친구가 활동했던 NGO 이름은 물론 사업 내용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다만, 친구의 주거환경이 상당히 열악했고, 함께 방문했던 수혜농가로부터 융숭하게 대접받았던 벌집을 닮은 귀리면(莜面)과 직접 빚은 고량주에 대한 기억만 오롯이 남아 있다. 2000년대 중반이었기에 중국의 농촌지역 빈곤문제는 글로벌 차원의 이슈였고, 국제기구와 NGO를 포함한 대부분의 공여기관이 중국 내에서 크고 작은 사업들을 추진하였다. KOICA도 2012년 중국 주재원을 철수하기 전까지 다수의 ODA 사업을 진행한 바가 있다. 되돌아보면, 그 당시 중국 전역에서 진행된 수많은 개발협력사업과 더불어 젊은 현지 활동가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다소 열악한 활동여건 속에서도 젊은 패기와 소명의식이 더해져 적지 않은 중국 청년들이 현장에 투신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도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ODA 현장에 대한 동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밀레니엄개발목표(MDGs) 중 유일하게 달성한 빈곤인구 감소 중 중국의 기여도가 절대적으로 높았다는 점에서, 그 기간 중국에서 활동한 국제 공여기관과 활동가, 사업현장을 누비고 다녔을 현지 청년 활동가들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개발협력을 학문적으로 접한 것은 중국인민대학 박사학위과정에 있을 때 창장(長江) 학자로 초빙된 Stanford 대학 Scott Rozelle 교수가 개설한 ‘발전경제학’을 수강할 때이다. 당시 Scott 교수는 국제기구와 NGO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개발협력사업의 효과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강의에서 이러한 실증연구의 내용과 결과를 소개하였고,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실험을 설계하고 이를 현장에서 실증할 수 있다는 점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중국 농촌 초등학교에서 실험군 학생들에게 우유를 제공하고 대조군과 학업성취도를 비교한 사례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중국인민대학 재학 시절, 실증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몸소 실천하신 원테쥔(溫鐵軍) 교수님도 현장 기반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셨다. 당시 교수님은 농업·농촌발전학원 원장이면서 중국 농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삼농(농업·농촌·농민) 학자였고, 중국의 대표 석학으로 대내외적으로 그 명성이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교수님이 주도하는 연구과제 수행을 위해 중국 농촌 현지조사에 참여하면서 현장 기반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실증적 연구 태도를 배웠고, 교수님이 북한에 직접 방문하여 농촌의 실상을 산업구조, 구소련 붕괴 등의 거시적 환경 변화와 연계하여 해석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정확한 국가 이름을 기억나지 않지만, 내전으로 불안한 남미 어느 국가를 방문해 반군들이 활동하는 농촌 깊숙이 들어가 농촌주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대목에서는 실증적 연구를 추구하는 학자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베이징시에서 출생하였으나 문화대혁명 시기 하방(下放)하여 11년간 농촌에서 생활하며 쌓은 경험과 농업·농촌에 대한 애정이 원테쥔 교수님의 연구 철학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교수님이 평소 강조하신 “두 다리로 학문을 한다(用雙脚做學問)”는 말씀에 그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 입사한 첫 직장이 KOICA이다. 입사 연도인 2011년은 한국 개발협력의 과도기였다. KOICA는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도 이제 막 박사급 분야 전문관을 채용하고 분야별 전략을 수립하면서 나름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ODA 예산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대외적으로는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직후였고, 부산에서 세계개발원조총회(HLF-4)를 개최하면서 원조효과성에서 개발효과성으로의 전환에 일조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개발협력 지식이 미천했고 관련 경험도 전무했던 나의 자소서에 어떤 내용이 어필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KOICA에 재직하는 동안 현장 경험에 대한 갈급함은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처음이자 마지막 출장이었던 우간다 북부지역 카라모자(Karamoja)의 KOICA-WFP 협력사업 타당성조사 경험은 잊을 수가 없다. 해당 지역이 분쟁지역이었기에 방탄복과 헬멧을 구비하고 UN 마크가 찍힌 픽업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것 자체만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동 중, 숯 자루를 머리에 이거나 자전거에 싣고 다니는 주민들의 모습은 개발협력 초보 활동가가 산림 보호와 생존권 보장 사이에서 고뇌하도록 하기에 충분했고, 사업지에서 WFP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Purchase for Progress (P4P) 사업의 일환으로 현지 통신사와 협력하여 일당을 통신비 충전 방식으로 지급하는 모델은 선진 공여기관의 위상을 실감하도록 했다. 그리고 KOICA에 요청한 저온저장고 기능을 갖춘 농산물 집하장 건설은 안정적 전기 공급의 어려움으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현장조사의 묘미를 처음으로 맛보았다. 그리고 농가 방문을 통해 가지, 양배추 등의 채소를 건조하여 채소 공급이 어려운 건기에도 섭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저가의 건조장 지원이 주민의 균형적인 영양 섭취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사업 발굴의 DNA가 깨어나는 듯했다. 이 경험은 적정기술 혹은 지속가능 기술의 개발협력 연계를 설명하는 수업에서 아직까지도 종종 언급되곤 한다.

 

   나의 개발협력 실무경험과 학문적 지식이 처음으로 학술적 성과로 정리된 결과물은 2013년 학술지에 게재된 ‘농촌종합개발 ODA 모델의 효과적 추진방안 연구: 베트남 새마을운동 시범사업 사례를 중심으로’ 논문이다. 당시는 새마을운동 ODA 사업이 확대되는 시기였고, 성공적으로 추진된 사업모델을 발굴하여 향후 한국형 농촌종합개발 ODA 사업에 시사점을 주고자 했다. KOICA 재직 당시 도서관을 모두 뒤지다시피 하여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그중 2001~2002년 베트남 타이웬(Thai Nguyen) 성과 광찌(Quang Tri) 성에서 추진한 ‘베트남 새마을운동 시범사업’이 적어도 문헌으로 정리된 최초의 새마을운동 사업이면서 우리나라 농촌종합개발 ODA 사업의 효시라고 판단하였다. 논문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결과를 정리하고 성공요인을 도출하였다. 문헌연구에 기초한 논문이었기에 실증적 근거가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사례에 기반하였기에 논문에 대한 문의가 종종 있었고 유사 논문에 인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사업 종료 후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해당 사업에 대한 사후평가를 통한 실증분석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시간과 예산 제약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으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도 ODA 현장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했다. 물론, 2013년 시작된 KAPEX (개도국의 식량안보를 위한 농정 성과 확산 사업, Korean Agricultural Policy Experiences for Food Security) 사업의 원년 연구진으로 참여하여 파트너 국가들을 방문하여 현지 연수와 워크숍을 수행하고, 협력사업 발굴을 위한 공동연구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단기 출장으로는 현장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부터는 교실과 ODA 현장의 연계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개발협력은 실용적이고 실증적인 학문이기에 교실에서 전달되는 이론과 ODA 사업현장의 괴리를 경계해야 한다. 사업현장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변수들과 각종 리스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이론만으로 습득한 개발협력은 현실과 동떨어진 비실용적 학문에 불과하다. 현장 전문가 양성 교육뿐만 아니라 학문연구를 목적으로 할 때도 이론과 실제의 병행은 필수적이다. 다행히 ODA 평가사업을 통해 기 추진된 사업을 현장에서 모니터링하고 평가함으로써 현장 기반 학습의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이론수업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부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학생 연구진이 제한적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향후 ODA 예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그에 상응하여 현장 활동가와 분야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론과 실습을 연계한 매우 실용적인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매우 시급하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올해 KOICA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대학원생 대상 ‘전문가 양성사업’은 개발협력 학문의 특수성 및 시대적 요구를 고려한 매우 시의적절한 교육사업이라고 판단된다. 물론, 약 1주일 동안의 현지 출장으로 현장 기반의 학습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고, 시간과 공간, 비용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도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 기반 학습에서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업분야만을 놓고 보면, 사업현장에서 재배되는 작물 하나하나에 대한 궁금증과 현지 주민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기초해 대상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KOICA ‘전문가 양성사업’이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점차 확대되어 국내 ODA 전문가 풀 확대에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

 

   2024년 여름 학생들과 함께한 베트남 현장 학습은 지난 20여년 동안 개발협력과 함께 했던 내 삶의 궤적을 반추할 수 있는 계기인 동시에, 그동안 멀게만 느껴지던 ODA 현장과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히는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중에 ‘발로 뛰는 연구자’와 ‘현장 기반 활동가’가 많이 배출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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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현장에서 배운 ‘실사구시’의 국제개발협력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석사과정 김은수

 


   이번 베트남 성과평가 실습 경험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장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 전공은 농업 정책과 담론, 성과 측정 방법론, 농촌 경제 등 농업 분야 국제개발협력 관련 지식을 공부하지만, 커리큘럼상 국제개발협력과 ODA 사업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경험과 논의를 하기는 어렵다. 이미 풍부한 현장 경험이 있는 학생들도 꽤 있고 그러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현장 경험도 없고 정책·담론 중심의 연구실 소속이기에 ODA 사업 참여 기회가 많지 않은 나의 경우는 그에 해당하지 않았다. ‘국제농업개발 성과평가의 이해’ 수업이 개설된 것은, 1년간 대학원에 다니면서 농업 국제개발협력을 둘러싼 이론과 방법론, 담론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실제 현장에서 국제개발협력 ODA 사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증이 쌓여가던 차였다.

 

   그래서 이 수업이 열렸을 때 나에게 딱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국제개발협력 사업 현장과 평가의 개념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왜 평가한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강생 중에는 전문가 수준의 학생들도 있었지만, 나처럼 국제개발 사업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개린이’(개발협력+어린이) 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더불어 전문가 수준의 학생들이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을 아끼지 않았고, 초심자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했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현장 실습 전까지 여러 특강을 통해 평가의 개념과 유용한 방법론을 배우고, 중간, 종료보고서 등 사업 관련 다양한 문서를 읽으며 사업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나의 역량 부족이 여실히 느껴졌다. 특히 부족하게 느껴진 부분은 인터뷰 기술과 인사이트 도출 능력, 이렇게 두 가지였다. 인터뷰의 경우, 문화인류학과 학부 재학 시절부터 많은 수의 인터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인터뷰는 나름대로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사업 수혜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 다른 숙련자들이 자연스럽고 원활하게 이끌어가는 반면, 나는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내가 계획된 질문에만 신경 쓰는 동안 숙련자들은 인터뷰 기술 중 ‘캐묻기(probing)’를 잘 활용하여 소득을 얻는다면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얻는지와 같은 정보를 구체적으로 물어봄으로써 주제와 관련된 인터뷰이들의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했다. 한편, 영어 또는 한국어에서 베트남어로 한 단계 통역을 거치기 때문에 통역사가 명료하게 이해하고 인터뷰이에게 전달하기 쉬운 언어로 말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나는 때로 모호하게 말해서 혼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내가 “Do you think your voice is reflected in your family decision making?”이라고 말하자 숙련자 선배가 “Is your opinion considered ~”라는 문장으로 정정해주었다. 단어 선택과 질문 내용 구성의 중요성, 특히 인터뷰이의 말을 들으며 그때그때 맥락을 파악하고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어야 하므로 순발력과 기존 경험 및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 인사이트 도출의 경우, 나는 개별 인터뷰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숙련자들은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서 바로 핵심적인 인사이트를 도출하곤 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작목반이 협동조합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배경, 소수민족이 사업 전반에 강조된 것에 비해서는 크게 특화된 사업이 아니라는 점 등을 바로 파악했다. 지금은 회의록 정리만이라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경험을 쌓아서 나중에는 스스로 조사의 진행과 해석을 주도하는 역량을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량의 차이를 느끼는 동시에, 성과관리 분야 전문성의 중요성 또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나 스스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많이 공부하고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한 한편, 전문가와의 적절한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꼈다. 이번 평가팀에서는 인프라, 건축, 성과관리 총 세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해서 적절한 부분에 개입하여 평가의 품질을 높였다. 국제개발 사업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과 기술이 통합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분야별 전문가의 활용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적절한 전문가를 섭외하고 업무를 적절히 조율하여 그들의 전문성이 적재적소에 쓰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익숙함과 능숙함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국제개발 사업에 익숙하다면 성과평가도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베트남 사업의 종료보고서에서도 실험군과 대조군의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전문성, 즉 풍부한 경험과 지식은 ‘상상력’과 연결된다. 인터뷰 과정에서 캐묻기를 통해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터뷰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왔고 사업으로 받은 수혜가 그들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상상하게 된다. 이러한 상상을 바탕으로 더 깊이 있는 질문이 나오며,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상상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현장에 대한 감각이 길러지면 나중에 어떤 보고서를 읽더라도, 텍스트 이면에 있는 실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게 된다. 그동안 주로 한국에서 텍스트 중심으로 국제개발을 접해왔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습득한 현장에 대한 감각과 이를 바탕으로 한 확장된 상상력은 이전의 한계를 벗어나 더 풍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줄 거라 기대한다.

 

   내가 이번 평가 사업에서 특별히 맡은 역할은 회의록 정리와 소수민족 연구였다. 회의록은 단순하지만 조사의 전반적 흐름을 파악하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초급 평가자에게 적합하다. 나도 회의록 작성을 위해 면담 내용에 보다 집중하면서 전체적인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소수민족은 사업에서 주요하게 고려된 요소이기도 하고, 내가 전통문화에 관심 있기 때문에 평가와 별개로 문화를 조사하고자 했다. 소수민족 특화 질문을 개발하기 위한 나의 노력으로, 기존에는 계획에 없던 소수민족 세션이 만들어져서 나를 비롯한 3명의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주어졌다. 인터뷰 결과, 짧은 면담으로는 본래 생각했던 문화인류학적 조사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소수민족의 생활과 소액대출 사업 간의 연관성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조사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사업이 소수민족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는 취약계층 집단 중 하나로서 고려된 경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수업을 수강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과관리나 평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였지만, 1학기 이론 학습과 더불어 계절학기 현장실습까지 마치면서 평가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의의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평가 사업의 경우, 기존 보고서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을 발견하여 전체적인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논리적 허점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기존 보고서에서는 ‘베트남 뚜옌꽝성 포용적 농촌개발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영향)를 ‘뚜옌꽝성 주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두고 그에 맞춰 로그 프레임을 구성했는데, 이로 인해 각 컴포넌트가 수평적·수직적으로 유기적·통합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평가 출장 때 뚜옌꽝성 정부와의 면담을 통해 베트남의 ‘신농촌개발계획(NRD-NTP)’에 초점을 맞춰 사업 설계와 실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고, 신농촌 지위 획득을 위한 19가지 기준에 맞추어 변화이론을 다시 설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사업이 왜 이렇게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베트남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이러한 점들이 미리 고려되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번 평가 사업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사업 설계부터 종료 이후 시점까지 수많은 문서를 검토하고 여러 현장 방문을 통해 풍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지역적 맥락에 따라 다른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베트남은 정부의 의지와 역량이 강하고, 사회주의 국가로서 바텀업보다는 탑다운 방식의 정책 실행에 강점이 있는 국가이다. 풀뿌리 수준의 주민 수요와 참여가 고려되는 측면은 약하지만, 효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고 정부의 장기적 추진 역량으로 인한 지속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NGO 사업 등 커뮤니티 단위에서 시작되는 바텀업 방식의 국제개발 사업에 익숙했던 터라 이러한 탑다운 정부간 ODA 사업을 접한 경험이 의미가 있었다. 각각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조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습 측면을 떠나 지금까지의 개인적인 소회를 말하자면, 한마디로 정말 즐거웠다. 우리 전공은 유달리 유대감이 넘치는 공동체이지만, 프로젝트 진행이나 출장은 주로 연구실별로 따로 하기에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연구나 협업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밀도 있게 다 같이 일하고 공부하며 성장하는 시간을 가져서 행복했다. 한편, 초심자의 눈으로 봐도 본 평가 사업은 꼼꼼하고 완성도 있게 설계되고 진행된 것이 보였다. 첫 평가 경험을 이렇게 모범적인 사례를 통해 경험한 것은 학생으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 수업을 통해 이론적으로 학습하던 내용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적용하여 실제 사회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니, ‘실사구시’로서의 국제개발협력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도 평가를 비롯하여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여러 요소를 공부하고 경험하며 전문가로 성장해나가고자 한다. 언젠가 내가 직접 평가 사업을 주도하고 의미 있는 분석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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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마주한 개발협력의 다면체: 베트남 뚜옌꽝 종료평가를 통한 교훈과 도전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박사과정 민수연

 


   베트남 뚜옌꽝성 포용적 농촌개발 사업 종료평가는 개발협력 현장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소수민족이 공존하는 다문화 지역인 뚜옌꽝성에서 코이카는 여성 역량강화, 소득증대, 인프라 개선, 교육 및 보건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농촌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내가 중점적으로 살펴본 여성발전기금을 통한 소액금융 사업은 지역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지위 향상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현장 평가를 통해 문화적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한계점도 명확히 드러났다.


   소수민족 여성들과의 심층 인터뷰는 연구자로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수민족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과거 차별받던 소수민족의 지위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현재 소수민족에 대한 정부 지원이 증가했다는 것과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 차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여성들의 인식이었다. 카오란(Cao Lan)족이 거주하는 탄롱 꼬뮨에서는 가장 가까운 은행이 10km나 떨어져 있고 전반적인 가구 소득수준이 낮아 금융 접근성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액금융 사업이 실질적인 금융 접근성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소액대출 사업 수혜자들은 사업을 통해 가정 내 소득이 증가했으며, 증가한 소득은 다시 사업으로 재투자하거나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현장 면담을 통해 16개의 소수민족 마을 중 단 1~2가정만 지원받았으며, 선별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본 사업에서는 소액금융 사업이 여성 역량강화를 위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및 소액대출 대상자를 위한 교육이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여성을 수혜자로 인식하고 여성 역량강화가 사업의 주요 목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사업 설계에 있어 부족한 부분이 보여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여성 역량강화 목표 외에도 보건, 인프라, 교육 시설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 현장을 직접 방문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통해 이론으로만 배웠던 농촌종합 개발협력 사업의 복잡성과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사업의 효과를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량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수혜자들의 실제 경험과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점이 피부로 와닿았다. 다만 짧은 현장 방문 기간 동안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평가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생겼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은 사업에 대한 공식 보고서와 실제 현장에서의 평가 간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사업의 투명성과 책무성 확보를 위한 종료평가의 중요성과, 사업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이러한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를 유추해 봤을 때, 현지의 복잡한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 사업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담당자와 PCU 간의 소통이 미흡, 정량적인 측면에 치중되어 있어 질적인 변화를 포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향후 개발협력 사업의 개선을 위해 여성 역량강화 부분에서 교훈과 환류 과제로 반영될 수 있을 몇 가지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1.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프로그램 설계: 소수민족의 문화적 특성과 필요를 반영한 맞춤형 사업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통 수공예 기술을 관광상품 사업 모델로 접목하는 등 경제적 이익과 문화 보존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통합적인 사업의 구상이 필요하다.

2. 성평등 교육의 강화: 소액금융을 통해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의사결정권을 갖기 위해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여 여성들의 활동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높여야 한다. 베트남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터뷰를 통해 드러났지만, 본 코이카 사업에서는 모든 교육의 대상자가 여성이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3. 여성 중심 경제교육의 강화: 단순히 경제활동을 하거나 대출금을 상환하는 것이 여성의 인권신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보다는, 빈곤 가구 여성들이 더 주체적으로 대출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저축에 대한 교육과 사업 및 대출금 활용에 대한 그룹 활동 지원, 실용적 교육을 하는 전문 강사를 통해 대출금 관리 및 상환이 아닌 자신과 가정에 초점을 맞춘 경제교육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4. 모든 섹터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 여성 역량강화 사업을 교육, 보건, 인프라 개선 등 다른 분야의 사업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향후 농촌 종합개발 사업 속 여성 역량 강화는 지역 내 여성들이 아동 교육 및 보건 분야에서도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베트남 출장은 개발협력 평가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사업의 한계와 개선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간이었다. 현장에서,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서도 이어진 더 나은 개발협력 사업 설계와 실행에 대한 고민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비판적 고찰을 통해 사업 접근 방식을 개선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우리의 노력이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문화적 다양성 존중으로 이어져, 개발협력의 진정한 가치가 실현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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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평가, 평가자의 시각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석사과정 박소현


 

   2024년 1학기를 시작해 계절학기까지 우리는 개발협력이 무엇인지, 성과평가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을 습득했다. 이번 계절학기를 통해 실제 성과평가 현장을 경험하면서 글로 배운 것을 넘어 몸으로 습득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배운 것들은 앞으로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게 될 때 계속 기억에 남고 참고할 만한 소중한 배움이었다. 1학기 동안은 다양한 전문가님들로부터 인터뷰하는 법, PDM 보는 법, 분야별 전문가들이 전해주는 이론을 배웠다. 현장에 가기 전 보고서들을 읽고 분석하며 무엇을 수행하고 평가할지를 배웠다면, 계절학기 현장 실습에서는 평가자로서의 시각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를 통해 느낀 평가자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뚜옌꽝에서 첫날, 차를 파는 작목반 인터뷰를 갔을 때였다. 좁은 공간, 더운 날씨, 뜨거운 가마 앞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차 작목반 대표님이 차 기계를 잘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내용들, 처음엔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KOICA에서 지원해준 차 덖는 기계들을 보면서 ‘잘 사용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정도로 생각 했지만 돌아오는 차에서 경험이 많은 선생님이 "비즈니스 쪽은 아예 지원이 없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발 지원은 생산량뿐 아니라, 그들이 자립하여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몰랐었던 것 같다.

   첫날 나는 다시 한번 우리가 어떤 일을 하러 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지원해 준 기계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 제공해 준 프로그램에 만족하고 있는지, 생산량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등 눈에 보이는 성과를 생각했다. 그러나 비즈니스 쪽 지원이 없었다는 것을 들으면서, 앞으로도 이 성과가 지속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원받은 사람들은 계속 지원받고 싶어 하며, 지원을 해주기 전보다 조금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때 평가자들이 바라봐야 하는 것은 단순히 더 좋아졌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이 맞았는가, 지속 가능하도록 지원이 되었는가, 적절한 범위로 지원이 되었는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 작목반에 비즈니스적 지원이 없었다는 것은 차를 덖는 기계의 지원으로 차 작목반에 가입한 사람들이 기계를 써서 생산량은 올랐지만, 이전에 중개상인을 통해 차를 판매하는 방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차를 가공해 판매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다른 차를 판매하는 협동조합을 평가하면서, 첫 번째 차 작목반에 비즈니스적 지원이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차 판매 협동조합은 농업 전시회 등 판로 지원을 해주어 새로운 판로가 개척됨을 확인했다.

   평가를 하는 하루하루 느낀점이 쌓이면서 첫날에 들은 선생님의 말과 사업지가 많이 떠올랐던 것 같다. 평가자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숫자로 평가되는 요소 이외에도 지속성, 생활개선, 적절성 등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평가는 소득증대, 교육, 보건, 인프라, 여성기금, 공공행정 6개의 파트로 나뉘어 다양한 기관들을 방문했다. 기관들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사업 지원에서 이들의 시각을 고려하는데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큰 용량을 지원한다고 다가 아니고, 좋은 것을 지원한다고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번 사업을 통해 평가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보였다.

   첫 번째로 차 작목반에 갔을 때 차를 건조시키는 기계를 방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점을 느꼈다. 다른 기계들은 잘 사용되고 있었지만, 하나의 기계만 새것처럼 깨끗했다. 이 기계를 잘 사용하는지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대용량이라 잘 사용하지 않고, 전기량이 많이 공급되어야 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차 물량이 많아지면 사용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이들의 생산량을 확인하고 지원된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비슷한 사례는 보건소에서도 있었다. 아동들에게 주기적으로 백신을 접종하는 보건소에서 백신 보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 한국에서 지원한 멸균기가 눈에 띄었다. 그 안에 가위, 칼, 집게 등 기자재들이 가득 차 있었고, 한눈에 봐도 물품 저장용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옆에는 작은 오븐이 있었다. 지원받은 멸균기 사용량에 대해 묻는 질문에 차 작목반과 같이 "대용량이기 때문에 전기가 부족하다, 작은 오븐을 더 자주 사용하고 미니 멸균기가 더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보건소는 하루에 50명이 안 되는 인원을 진료하기 때문에 대용량의 멸균기보다는 소량으로 멸균할 수 있는 기기를 더 많이 사용했다. 사전에 이 점이 고려되지 못했고, 지원의 적절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른 기관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시각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원받은 기기들은 좋았으나 TV의 위치가 칠판 위에 있어 어른들도 고개를 들고 봐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TV를 보기에 너무 높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좋은 기기를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사업을 진행할 때 조금만 지원받는 사람들을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지원 당시에는 지원받는 사람들의 시각을 최대한 고려하지만, 지원 기기나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시선이 보이는 곳, 학생들의 키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책걸상 등 조금 더 신경 썼으면 좋았을 것들을 평가함으로써, 다음 지원 시에 고려할 수 있도록 교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평가가 필요한 이유라는 것을 느꼈다.

   평가자들은 지원받은 이들의 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잘 전달해야 할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현장에서 PCU와 소통하는 법, 회의록 작성하는 법, 통역 선생님과 일하는 법 등 글로 배울 수 없는 것을 직접 보고 느끼며 첫 개발협력 현장에서 중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개발 협력에서 지원의 중요성뿐 아니라 평가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 시간이었으며, 이후에는 관련 정보를 더 찾아보고 공부하여 더 적절하게 필요한 곳에 지원이 갔는지 측정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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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 평가와 파레토 최적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석사과정 배준철


 

1. 파레토 최적이 왜 갑자기 나오는가?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 또는 파레토 효율(Pareto Efficiency)은 한정된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된 상태를 말하는 경제학 용어이다. 최적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파레토 최적은 그렇지 않다. 파레토 최적 상태는 생산과 교환 측면의 두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생산의 효율에 있어 어떤 재화의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다른 재화의 생산량을 감소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교환의 효율성 측면에서 한 사람의 효용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다른 소비자의 효용을 반드시 감소시켜야 한다. 이것이 파레토 최적, 또는 파레토 효율의 기본 전제이다. 파레토 최적 개념이 ODA 평가에 적용된다면 어떨까? 여유가 없이 빠듯한 상태, 관련 주체들에게 너그럽지 않을 것 같아 왠지 달갑지 않다. 파레토 최적의 기준을 농업 ODA 프로젝트에 거칠게 대입해 보자. 작물의 생산에 있어 생산량의 증가분만큼 환경 자원의 소모와 피해 정도도 동일하게 증가하며, 이는 효과성의 가점만큼 환경 부분의 감점이 비례하여 적용될 것이다. 역시 달갑지 않다.

   다행히 파레토 최적의 반의어도 존재한다. 파레토 비효율이라는 불리는 배분의 상태는 재분배를 통해 다른 구성원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고도 한 명 이상의 구성원의 효용을 증가할 수 있다. 이는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이라 불린다. 다시 농업 ODA 프로젝트로 돌아오면, 가치사슬 강화 활동을 통해 생산량이 향상되고 농민의 조직적 유통 판매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기존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중개상의 이익이 필연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감소된 이익은 소농의 증가된 이익으로 치환된다는 점에서 파레토 최적처럼 보이지만 중개상은 기존보다 양적‧질적으로 향상된 수확물을 확보할 수 있으며 소농과의 개인 간 거래보다 농민 조직과의 안정된 계약을 통해 단기적 손해를 상쇄하는 초과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파레토 개선은 ODA가 추구하는, 그리고 지속되었으면 하는 이상에 가깝다.


2. 그러니까 종료평가 감상문에 왜 파레토 최적이 나오는가?

   이번 종료평가에 적용되는 기준은 총 5가지이다. OECD/DAC 6대 기준 중 영향력은 종료평가에서 다루기 어렵다. 우리의 가정은 협력대상국의 현재(AS-IS)는 파레토 비효율 상태이며, 프로젝트를 통한 이상(TO-BE)은 파레토 개선 상태이다. 가정은 평가 기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투입과 산출만을 고려할 때, 이상적인 투입은 관계된 구성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자원이 할당되는 상태이며, 이상적인 산출 결과, 즉 편익은 모두에게 배분되고 어떤 집단도 손해를 보거나 불리해지지 않아야 한다. 투입과 산출은 이번 종료평가에서 적절성, 효율성, 효과성, 지속가능성, 일관성으로 세분화되고, 다듬어진 질문들로 포장되어 빡빡하게 피평가 대상들을 검증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 평가 기준들은, 또는 세부 질문들은 모두 파레토 개선이 적용될 수 있는 파레토 비효율 상태를 평가하게 될까? 행여 파레토 최적 상태임에도 파레토 개선의 잣대를 적용하여 평가하게 되지 않을까? 이제 살펴보기로 한다.

 

3. 파레토 최적 개념을 평가 보고서에 넣어 보자

적절성

   개입이 대상 집단의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지 확인해 보는 기준이다. 이번 평가에서 대상 집단은 뚜옌꽝성의 농가, 일반 주민, 학부모, 학생, 소수민족, 의료 인력, 환자 등 다양하며, 범위를 넓히면 꼬뮨 단위 정부, 현 정부, 성 정부로 확대할 수 있다. 농가에게 제공되는 작목반 활동의 중요도가 높아지면 소수민족에게 제공되는 소액기금 예산이 감액될 수 있다. 또는 프로젝트의 인적 자원이 작목반 위주로 구성될 수도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학교 건축 예산은 작목반 지원, 여성기금, 보건소 건축을 합친 것보다 많은데, 1,500만불의 예산은 고정되어 있으니 현재의 예산 구조는 파레토 최적 상태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교육의 효과는 중장기적으로 승수효과와 확산 효과를 보장하니 파레토 개선 관점에서 적절한 개입으로 볼수 있을까?

   또 이번 사업은 신농촌개발 프로그램에 매우 부합하여 적절성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데 과연 신농촌개발 프로그램은 뚜옌꽝성 주민의 니즈가 반영되었다고 봐야될지? 아니면 프로젝트 기획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니즈의 수는 무한대일수는 없으니 정부의 정책 비중만큼 주민의 요구는 과소 반영된 상태로 봐야될지 고민이 생긴다. 최적의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니즈를 반영한 Well-made 기획인지, 주민의 니즈가 반영될 여지가 많은, 개선의 기회를 놓치고만 Poorly made 기획인지 판단해야될 시간이 다가온다.

일관성

   개입이 다른 개입과 상호 보완, 조화를 이루거나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는지를 평가한다. 다른 개입이 있을 경우 중복이냐 연계이냐를 평가하는데 중복은 파레토 최적의 관점이다. 기존의 타 개입은 그 자체로서 최적의 상태인데 본 프로젝트가 중복 지원되면서 잠재적 수혜자들에게는 손해를 끼치게 된다. 연계는 파레토 개선의 관점이다. 중복되지 않은 타 개입과 본 프로젝트는 각각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지만 이들이 연계하는 시점부터는 양 개입 모두 손해 없이 부가 편익이 창출되는 파레토 개선으로 변모한다. 시기적으로, 공간적으로, 내용적으로 중복되지 않은 ‘빛이 나는 솔로’들이, 본 프로젝트와 결합해 고득점의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효율성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시의 적절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목표한 활동을 완료했는지 확인하는 기준이다. 파레토 최적의 관점은 투입의 양과 산출의 시점을 효율성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투입의 양이 줄거나 산출의 시점이 늦춰지는 것은 발주처와 수혜자의 손해를 야기한다. 물론 투입의 양이 늘거나 산출의 시점이 앞당겨지면 수행기관의 손해이다. 사업수행기관(PC), 사업관리기관(PM), 협력국 수원기관(PCU), 시공사 등 여러 수행기관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협조한다면, 현재의 불량률을 줄여 손해를 없애고 미래의 신뢰도를 높여 잠재 이익을 얻게 되어 모두가 행복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딜레마에 빠진 죄수들처럼 서로 다투거나, ‘OOO와 아이들’처럼 누군가에 묻어갈 수도 있다. 

효과성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혜택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개입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효과성의 기준이다. 목표의 달성은 의도대로 완료했는지(산출물),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는지(성과), 그러는 와중에 참여자들의 역량도 향상했는지(준비도), 포용적으로도 고려했는지(포용성)를 묻게 되는데, 파레토 개선의 관점에서 동일한 투입량에 양질의 역량을 곱하면 동일한 시점에 달성된 산출량은 더 늘어나고 구석구석 분배된다. 성과는 고도화되고 가시화된다. 하지만 개선의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화의 공간도 많아 분배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효과는 반감되고, 어쩌다 음전하기도 한다.

지속가능성

   개입의 혜택이 자원을 고갈시키거나 미래의 불이익을 초래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의 기준이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성으로도 구분하는데 이를 측정하는 것이 제도, 시스템, 역량이다. 현재의 편익이 지속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개선보다는 최적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편익을 최적 상태로 가정하고 이를 유지하는 제도/시스템/역량의 여부와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미래를 평가하는 것에 철저하게 현재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있다. 장밋빛도 회색빛도 아닌, 지금 보이는 그대로를 평가하면 된다.

 

4. 이걸 왜 썼을까?

   균형은 어렵다. 눈을 감은 정의의 여신은 공정한 판단을 내리겠지만, 그녀도 한 발로 균형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노쇄한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만나고 보고 듣다 보니 평가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별별 시도를 다 해보다 파레토 개념까지 가지고 왔다. 이 정도 고민했으면 뭐라도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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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포용적 농촌개발 프로그램이 주는 교훈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서진원


 

   이번 베트남 출장은 여러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만큼, 나의 마음가짐도 다른 출장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평소 동료 학생들과 국제개발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기는 했지만, 이렇게 실제 현장에서 특정 사업을 보면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함께 많이 보면서 생각들을 많이 공유하고 나누고 싶었다. 특히, 학생들이 국제개발 사업의 명암을 모두 보고 여러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이 분야에서 일을 해오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국제개발 사업 현장에 실망하고 떠나는 모습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여러 모습들을 함께 살펴보고 더 나은 방향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또한, 이번 출장은 KOICA에서 진행하는 통합적 지역개발 모델의 사업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전 소속기관에서 추구하는 개입전략이 통합적 지역개발 모델이었고, 실제로 니제르로 파견되어서 담당했던 사업도 통합적 지역개발사업 모델이었기 때문에 본 모델에 대한 고민을 참 오래도록 해왔다. KOICA와 관련해서도, 네팔 농업-보건 통합 분야 국별협력사업 경쟁입찰에 참여하여 제안서를 준비해 보면서 KOICA가 발굴하는 통합적 지역개발사업의 사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베트남 사업은 어떨지 많이 궁금했었다.

   결론적으로 교수님, 전문가님들, 동료들과 나눈 여러 대화들은 내 개인에게도 여러 생각과 고민거리를 남겨주었고, 여러 분야를 다루는 사업인 만큼 여러 교훈(Lesson Learned)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베트남에서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평가 과정에서 발견했던 점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1. 사전조사와 기획의 중요성 (사업기획의 적절성: 사업은 이해관계자의 주요 정책 및 수요(needs), 우선순위를 반영하여 설계(design)되었는가?)

   예비/심층기획조사 보고서에서는 사업 요소들의 상황과 개입의 필요성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다. 농업, 교육, 보건 등 각 분야별로 현지의 상황과 수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했다. 그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보고서 내 조사 일정을 확인해 본 결과, 2번의 조사 모두 대상 지역사회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통합적 접근법을 기반으로 한 지역개발 사업의 경우는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직접 참여자이자 사용자인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담겼어야 하는 사업임을 고려할 때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점은 기획 과정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KOICA의 예비/심층기획조사의 진행 방법으로는 통합적인 지역개발사업을 심도있게 기획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4~5명 이상 투입되어야 하고, 각 전문가들의 조사 대상자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예산과 통역 등의 문제로 전문가 모두가 함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각각의 전문가들이 분야별 대상자를 충분히 만나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지 정부의 수요에 맞춰 멀티섹터 사업을 기획한 것은 여러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서의 교훈은, 통합적 지역개발의 모델을 기반으로 사업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KOICA의 기존 현지조사 방법(국내 전문가 위주로 약 1-2주 간의 현지조사)의 틀을 깨고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거나, 해당 모델 사업의 기획과 수행이 익숙한 국내외 NGO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본 사업 모델에서 다루고자 하는 다양한 수요의 범위는 매우 넓은 반면, 각 분야별로 고민해야 될 점들은 너무나 깊다. 그만큼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접근으로 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분야별 개입에 대한 고민: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효율성: 사업은 주요 투입 및 활동 간 균형,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추진되었는가? 효과성: 사업의 중장기 성과(outcome) 및 목표(goal)를 달성하였거나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외적 일관성: 사업은 대상 지역 내 타 공여기관 사업 대비 KOICA/파트너 기관의 비교우위를 기반으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이었나? 그러하다면 어떠한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가?)

   유치원은 초중등학교와 학생 수는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초·중학교보다도 규모가 가장 컸고 앞마당도 가장 넓었다. 설계 시점부터 유치원의 면적이 다른 초중등학교들보다도 가장 컸다. A초등학교는 음악실, 도서관 등 시설이 다양했으나 화장실 수가 부족했고, B초등학교는 음악실, 도서관은 부재했으나 화장실 수는 충분했다. CM의 건축 기본계획 조사보고서 상에는 화장실의 면적은 모두 동일하게 계획되었으나, 어떤 이유로 변경이 된 듯 했다. 아마 현 별로 학교 시설 구성에 대한 다른 기준이나 니즈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더 깊이 파악하진 못했다. 건축은 큰 비용이 들어가는 요소이고 일반적으로 건축은 예산이 부족하거나 대부분의 경우에 완공 후에도 사후 보완요청이 들어오는 만큼, 예산 사용의 균형과 효율성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한 사업에서 여러 분야가 섞여 있다 보니 분야별로 더 깊게 분석을 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교육 분야도 취학전 교육(Early Childhood Education, ECE), 초등교육, 중·고등교육, 평생교육 등 다양한 영역으로 나뉘고 각 영역의 현재 상황과 이슈에 따라 사업의 목적과 목표가 달라지기 때문에, 유치원부터 중등학교까지 건축한 본 사업의 경우는 교육 분야 개입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대상 지역사회에 필요한 건축물임은 분명하다. 선생님, 학무모, 학생들의 만족도도 당연히 높았다. 하지만 대상 지역사회의 수요를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정확히 파악하고 이 수요 해결을 위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후, 해당 목표를 효율적인 방법으로 달성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 과정이 조금 더 확보되었다면 본 사업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더욱 높일 수 있었을 것 같다. 혹은,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목표보다는 (아동의 권리 보호 측면에서) ‘질 높은 전인격적 교육 제공과 안전하고 아동친화적인 교육 공간 조성’을 부각시켰다면, 개입의 목표와 사업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편했을 것 같다.

   교육 분야를 살펴보며 얻은 교훈은 적절한 수준의 전문가 투입에 대한 부분이다. 베트남 정부 측에서 요청하는 사항들을 그대로 실행하기 보다는 교육이나 아동권리 전문가가 건축 부분에서도 컨설팅을 제공한다면 더욱 아동친화적인 공간을 조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건축부터 역량강화 교육내용까지 모두 한국 전문가가 담당하기 어렵다면, 현지의 교육전문가도 함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사업에서는 한국 교육전문가는 교사 역량강화에 집중한 것으로 보였고, 현지 인력 중에서는 교육 분야 담당자가 부재했다. 분야별로 접근법이나 개입방법이 세분화되고 고도화된 만큼, 건축 활동이라 하더라도 건축물의 완성도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하드웨어(건축물)와 소프트웨어(아동권리, 교과과정, 교수법 등)의 연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연계를 강화해야 베트남 정부의 자체 예산이 아니라 한국의 ODA 예산을 지원해야 하는 타당성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분야를 대표적으로 언급했지만, 보건 분야 사업내용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싶은 의견이다.


3. 통합적 지역개발 사업 모델에 대한 고민 (효율성: 사업은 주요 투입 및 활동 간 균형,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추진되었는가? 효과성: 사업의 중장기 성과(outcome) 및 목표(goal)를 달성하였거나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통합적 지역개발 사업 모델은 이상적인 모델이긴 하지만, 단일 프로젝트성 사업에 적합한 모델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점들이 존재한다. 제프리 삭스의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MVP)가 여러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마냥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지 못하고 여러 비판을 받은 것도 지금의 우리가 고민해야 될 지점이다. MVP와 이번 베트남사업은 통합적 접근법을 활용했다는 점 외에는 유사점이 적지만, 통합적 접근법을 활용한 MVP가 비판을 받은 지점들은 이번 베트남 사업에서 고민이 되는 지점들과 매우 유사하다. 낮은 비용 효과성(효율성), 멀티섹터의 복잡성으로 인한 평가의 어려움, 성과의 불분명함 등이 그러하다. MVP가 종료된지 약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전의 사례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우고 어떻게 새로운 사업에 적용하고 있는가. 연구를 통해 이전 사례의 교훈을 도출하고 이 교훈을 새로운 현장에 적용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학위를 시작한 만큼, 이 질문을 계속해서 내 스스로와 주변 동료들에게 던지며 고민을 놓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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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자의 책무성에 대하여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석사과정 이두리


 

   2018년 베트남 최대 명절인 뗏(Tết, 설)을 맞아 뚜옌꽝 지역에 방문했을 때 다음 해부터 KOICA 지원사업이 시작된다며 내걸었던 큼직한 현수막을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 2024년 그때 그 사업의 평가자로 베트남 땅을 다시 밟다니 인생사 아무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질문 한 줄에 서너 마디를 내놓으며 듣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가 하면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회식을 주도했다. 말통에서 꺼내오는 술은 마를 줄을 모르고 베트남 사람들이 풀어놓는 긴긴 설명은 통역사의 진땀을 쏙 빼놓는다. 그러고도 다음날 거뜬하게 일어나서 현장을 전두지휘하니 과연 이들의 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싶다.

   베트남 사람 특유의 교육열과 새벽을 깨우는 부지런함, 잘 살고자 하는 열심은 베트남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베트남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93%로, 1990년대 최빈국이었던 베트남은 2009년에 이미 중저소득국가(LMIC)로 진입했다. 그런 베트남이 발전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며, 국내 농촌 발전 모델의 성공 사례인 새마을운동을 참고하여 실행된 사업의 평가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금번 출장의 평가대상인 ‘베트남 뚜옌꽝성 포용적 농촌개발 프로그램(’19-‘23/1,500만불)’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삼은 ‘베트남 라오까이성 행복 프로그램(’14-‘19/1,400만불)’ 및 ‘베트남 꽝찌성 행복 프로그램('14-'19/981만불)’의 성공 사례를 다른 지역에 전수하기 위해 베트남 총리실에서 KOICA 베트남사무소에 직접 요청한 농촌개발사업이다.

   베트남 중앙정부 차원에서 사업성과 지역 확대라는 목표 의식을 갖고 기획한 사업이다 보니 현지 사업 수행기관인 뚜옌꽝성 정부의 관심과 적극성은 놀라웠다. 평가단의 짧은 현지 체류일정(3일)을 고려하여 분 단위로 촘촘하게 계획된 일정에 농민 인터뷰를 한차례 추가하였고, 학생들의 요청으로 갑작스레 마련된 소수민족 인터뷰에도 영어 통역사를 붙여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력해 주었다.

   뚜옌꽝성 정부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는 사업의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피평가자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자세라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무엇 하나 숨기려 하지 않는 태도에서 평가팀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사업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느껴졌다. 때로는 그 열정이 과해서 수혜자 면담 시 답변을 기다리지 못하고 대신 설명해 버리는 조급함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정부 관계자들이 본 사업에 얼마만큼의 애정과 이해도를 갖고 있는지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평가팀에게 하나라도 더 설명하려 애쓰는 뚜옌꽝성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평가자로서 본 사업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준비되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날마다 지연되는 일정에도 불편한 내색 없이 우리를 환영하고, 우리가 애써 사업을 수행한 것도 아닌데 연신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바라보며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우리에게 배우러 왔으니 잘 몰라도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 조각이 있었다는 것을 이들은 알까.

   이번 평가는 KOICA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양성과정(M&E 과정)의 일환으로 계획되었다. 강의가 시작된 3월부터 우리의 과업은 베트남 농촌개발 프로그램의 평가임을 알고 있었고 7월에 베트남 현지 출장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또한 미리 공지되었다. 사업을 수행한 국내 PC사와 PM사의 종료보고서도 사전 공유되었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 본 사업을 숙지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나는 현장 경험이 많지 않고 잘 모른다는 것을 이유로, 농촌개발사업을 직접 수행하고 평가해 본 경력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할 일이 많고 바쁘다는 것을 방패 삼아 하루하루 평가 준비를 미뤄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보고서는 몇 번 읽어봤으니까, 사업 내용은 알고 있으니까, 개발협력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하는 교만함을 무기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내면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실은 이 모든 말이 어불성설, 전문가들이 보면 우습지도 않을 미숙한 평가자의 변명이다. 단지 얼마간의 국제개발협력 업무 경험으로 하나의 사업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협력국에 대한 이해와 사업 수행 과정 전반에 걸친 배경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 며칠 현장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확인한 것만을 평가하는 것을 객관적인 태도라 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겸손한 평가자라면 기존에 알고 있던 배경지식을 활용하되 편향된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되며, 사업 보고서를 꼼꼼히 읽되 문서에 적힌 정보만을 그대로 신뢰하지 않고 현장에서 수집된 정보와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현지 방문 일정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엇을 문헌조사로 하고 현지에서 확인할지, 대면 인터뷰와 사후 설문조사의 질문에는 어떤 차이를 둘지 깊이 고민해 보는 신중함이 필요하지 싶다.

    그러니 평가가 잘 되려면 우선 평가자가 똑똑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이번 과업을 수행하면서 그다지 똑똑하지도 부지런하지 않았던 나는, 마지막으로 그 미안함과 아쉬움을 베트남 현지 출장에서 깨달은 것을 고백하며 달래려 한다.


1. 평가자는 대상자가 답변할 수 있는 수준과 범위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터뷰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원한다면 평가자는 각 대상자(Interviewee)가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의 범위와 수준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 한 번의 인터뷰를 통해 평가자가 알고 싶은 모든 정보를 얻으려 하기보다, 각 대상자가 답변할 수 있을 만한 핵심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양측의 피로도는 증가한다.


2. 평가자가 던지는 질문은 간단명료해야 한다.

   질문이 길어지는 만큼 대상자의 답변도 모호해진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상대방이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핵심 질문을 한 문장 내에서 던져야 한다. 이를 위해 질문지를 구조화하되 평가자가 내용을 정확히 숙지하여 문장 구성에 혼란이 없어야 한다.

 

3. 평가자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아주 중요하다.

   사전 질문지를 잘 준비했다 하더라도 인터뷰 진행 시 평가자의 말이 꼬이거나 모호한 설명을 덧붙일 때 혼선이 발생한다. 스스로 전달력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평가자는 질문지를 여러 번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대상자의 답변에 따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질문할 경우 정확한 발음에 주의하되 단문으로 질문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4. 평가자는 대상자의 비언어적인 답변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대상자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정확한 의견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이다. 본 조사에서는 특히 대상자가 사업의 혜택을 체감하지 못한 경우 구체적인 설명 없이 ‘좋다’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평가자는 대상자의 침묵이나 웃음, 모호한 답변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에 따라 적절히 질문을 변경하거나 추가할 수 있어야 한다.

 

5. 평가자는 통역이나 대상자를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평가자는 기대했던 답변을 얻지 못하더라도 대상자를 다그치거나 대략적으로라도 말해보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평가자의 조급함을 통역사가 캐치하여 대상자를 다그치기도 한다. 대상자가 평가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뭉뚱그려 얘기하거나 답변을 지어낼 경우, 양측의 신뢰도는 떨어진다. 



   현장에서 느낀 바를 두서없이 적어 놓았지만 사실 이에 앞서 준비되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 어떤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던질 것인가’에 대한 평가자의 충분한 고민과 계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고민의 깊이는 평가자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고 이는 현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간 몇 년의 해외 체류 경험을 통해 남녀노소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무언가를 바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느낌 통역’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상대방은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충분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인지,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공허한 말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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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을 통해 우리 정부 공적원조 다시 바라보기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이재준



   공적개발원조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복지를 위하여 투입되는 선진국들의 지원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지난 2000년 OECD 수혜국 리스트에서 제외되기 전까지 선진국들의 ODA 자금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투입되었고, 그 원조를 기반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했으며 공여국이 되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 30여년간 원조사업을 하는데 있어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무이한 국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우리 성공 경험을 다른 개발도상국과 나누고자 했다. 특히, 새마을운동은 우리나라의 가장 유명한 ODA 브랜드가 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교역이 많은 베트남은 농업이 GDP의 10%를 차지하고 인구의 45%가 농업에 종사하는 만큼 농업이 경제·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베트남 정부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모티브로 자국의 농업발전 모델을 구상하고 이른바 ‘신농촌 정책’을 추진해왔다. ‘신농촌 정책’은 베트남 농촌 지역 인프라 확충뿐 아니라, 생활환경 개선과 농민 소득증대를 위한 대단위 프로그램이다. 하향식 구조를 갖고 다소 관료주의적으로 추진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우리 새마을운동만큼이나 지방정부 관료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농촌개발을 위해 동원된 정부 자원은 괄목할 만하다.

 

   베트남의 ‘신농촌 정책’을 이행하는데 우리 정부 공적원조 자금이 투입되기도 했다. 우리정부가 지원한 공적자금은 KOICA의 무상공여재원을 통해 사업화되었는데 ‘신농 촌 정책’의 일부를 지원하고 우리 정부 ODA 지원방향을 반영하여 우리 정부 고유의 농촌개발 프로젝트를 구성했다. 예컨대, 미소금융이 포함되었고, 소득증대를 위한 조합이 구성되었다. 소수민족에 대한 고려와 여성 지원에 대한 사업내용들이 계획되었다. 이로써 우리 원조 색깔이 분명해졌고 독특한 한국형 ODA 사업이 계획되어 베트남 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 농촌개발을 지원하는데 우리나라의 독특한 농촌개발 경험이나 원조성격이 투영된 공여사업 모델이 갖는 의미가 왜 중요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환경과 여건이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의 독특한 경험이 두루 적용될 수 있으며 유효하다면 반드시 그 특성은 부각 되어야 하고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 원조특성이 부각 되는 이유는 수원국이 아니라 우리 정부를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ODA 자금이 우리 국민이 낸 세금으로 형성되기에 납세자의 기여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돕는 의미 있는 일에 쓰였고 이는 우리나라의 대외 경제활동에 이익으로 환원될 것임을 우리 국민에 알리는 정부의 책무는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우리 원조모델이 개발된 것인지, 개발된 원조모델이 환경과 맥락이 다른 수원국에서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는 모호하다.

 

   우리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프로젝트 접근방식에 한 국가의 개발 프로그램이 맞지 않는 옷을 입듯 끼워 맞춰진다. 대규모 프로젝트의 예산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한 국가의 정책을 실현하는데 작은 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수원국은 자국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대규모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니 공여국이 원하는 그림대로 계획서를 내민다. 우리 정부는 우리의 원조 성격이 반영되었고, 수원국은 자국 정책에 공여 재원이 투입되니 서로 밑질 것 없는 장사를 한 셈이다. 과연 그럴까? 만약 수원국 개발정책을 있는 그대로 지원해 주었다면 우리 정부 책무성이 훼손되고 수원국의 사회경제 발전에 덜 효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베트남에서 추진되었던 우리정부가 지원한 포용적 농촌개발 프로그램은 베트남의 ‘신농촌 정책’을 근간으로 우리정부 원조특징이 투영된 사업이며 단일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타 공여사업에 모범이 될 만큼 수원기관은 사업관리에 적극적이었고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원활히 이행되었다. 당초 계획했던 성과지표들은 충족되었고 대내·외적으로 사업의 성공을 축하한다. 평가자는 공여기관과 수원기관으로부터 사업 성공을 함께 축하하고 박수칠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프로그램으로 추진 되며 평가 받았어야 할 사업이 일관성이 없는 사업요소들과 결합되어 프로젝트로 구성되었을 때 옳은 평가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국에서 고안된 프로젝트 관리 이론인 PRINCE2에 따른 프로젝트의 정의는 현 상황(Business status quo)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거나 변화(Change)를 만들기 위해 제시된 방법론이다. 그렇다면 성과지표가 달성되었는지를 평가와 함께 사전에 식별되었던 문제들이 해결되었는지, 적용 방법론은 효과적이었고 효율적이었는지에 대해 숙고해 보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다른 접근법에서 보다 효율 이고 효과적인 결과가 도출될 수 있었을지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 정부가 베트남에 지원한 포용적 농촌개발사업은 수원국 정부의 ‘신농촌 정책’을 그대로 포용하고 지원하는 편이 효율성과 효과성을 조금 더 높이는 방법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ODA의 본래 취지에 따라 수원국 경제개발과 복지를 위한 정책을 지원하는데 초점을 두고 우리 정부가 선호하는 ODA 프로젝트 발굴에 덜 함몰되었더라면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결과가 도출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효과로 연결되지 못할 사업 구성요소에 투입된 자원을 수원국 정책목적 달성에 필요한 다른 사업요소에 배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농촌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 기획에 사용됐을 수도 있다. 만약, 성과평가 측면에서 더욱 논리적인 사업이 계획되었더라면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업이 관리되고 지속가능한 영향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나라의 원조 역사도 이제 한 세대가 지났고 원조규모도 6조원을 넘어가며 명실상부한 주요 공여국으로서 수원국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고려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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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발협력 현장이 던져준 고민들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석사과정 이화니



1. 들어가며

   일주일간의 베트남 뚜옌꽝성 종료평가 출장이 종료되었다. 개발협력 현장에서 구를 만큼 구른 베테랑 학우들과 달리 필자에게 베트남 뚜옌꽝성은 최초의 개발협력 현장이다. 첫 개발협력 현장 출장을 교수님과 전문가분들 및 학우들과 함께함으로써 다각도에서 토의하며 더 깊게 배울 수 있었음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이하는 이번 출장을 통해 느낀 점과 품게 된 고민이나 성찰들을 서투르게나마 미시 및 거시적 차원으로 분류해 작성해본 것이다. 이를 나의 ‘초심’이 담겼던 기록으로 남겨, 향후 다른 개발협력 현장들을 방문하게 될 때도 개발협력 초심자로서의 내가 무엇을 느끼고 고민했는지 기억하고 점점 더 개발협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2. 프로젝트 종료평가 자체와 관련된 미시적 성찰

2-1. 여성역량 강화부문 관련 조사 부족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기금은 여성역량 강화의 일환으로 포함된 사업요소이나, 이번 종료평가때는 여성역량 강화와 관련된 직접적인 내용은 접하기 어려웠으며 여성기금 회원들을 위주로 조사했다. 또한 실제 수혜자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질적인 자료 수집이 다소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역량 강화는 해당 사업이 관여된 섹터들 중 양적인 지표화가 가장 어렵다고도 볼 수 있는 만큼, 풍부한 질적 자료들로 평가 내용을 보충했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든다.

2-2. 사업 내 섹터 간 연결성 강화

   이번 종료평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는 사업에서 다루어진 섹터간의 분절화이다. 이번 사업은 다양한 섹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보다 통합적인 환경 개선을 꾀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사업이 보다 큰 효과를 내려면 사업 간 요소들이 서로 더 연결성을 띠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작목반의 소득증대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성역량 강화가 함께 이루어졌다면 여성 인권이 조금 더 실질적으로 제고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2-3. 인터뷰 과정 개선방안

   이번 경험에 따르면, 종료평가 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안은 현장을 방문하고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이 중 일반 농민들과 같은 직접수혜자들과의 인터뷰 시간에도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상대로부터 최대한 양질의 정보를 솔직하게 들을 수 있으려면 라포 형성이 중요하다. 인터뷰 시간은 워낙 짧기에 엄밀한 의미의 라포 형성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안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젊은 외국인들 여럿이 주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고급 전자기기인 노트북을 단체로 꺼내어 수혜자가 발언할 때마다 자판 소리를 내가며 메모하는 것은 수혜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이 경우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메모장과 필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수혜자가 답변하는데 있어 심리적으로 보다 편안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모든 말들을 통역가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안녕하십니까, 어디에서 온 누구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도의 말을 현지어로 연습하여 서두를 뗀다면 조사가 보다 수월하게 진행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3. 개발협력 관점에서의 거시적 성찰

3-1. 개발협력국별 특성 파악의 필요성

   이번 종료평가를 수행하며 개발협력국의 특성 이해의 중요성을 느꼈다. 예를 들어 이번 출장지였던 베트남에서 개발협력 사업이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지닌 강력한 정부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평가 시 정부들이 정보 공개를 투명하게 하려 하지 않거나 바텀업(bottum-up)식 수요 개발이 용이하지 않다는 단점들 또한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국가별로 정치체제나 문화체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전 경험을 그대로 다른 개발협력국에 이식하려 하기보다는 각 협력국별 특징을 충분히 파악한 후 평가를 진행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3-2. 개발협력 사업의 파편화 방지

   사업 내 섹터 간 연결성 외에 해당 평가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었던 다른 문제점은 수혜자들이 이전의 다른 사업이나 정부 프로그램의 수혜자이기도 한 경우가 많아 해당 사업만의 효과를 분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실제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여러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은 경우가 많아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소 헷갈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발협력 프로젝트 관련 국제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특정 지역별로 해당 지역 정부가 진행하는 사업들을 추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3. 개발협력국의 자립을 위한 개발협력의 지속가능성 제고

   해당 소제목의 고민은 이번 평가에서 특별히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나, 개발협력의 궁극적 목표가 그 필요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모든 개발협력 평가 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업에서 예를 들면 건축 전문가로 참여하신 현미주 전문가님께서 학교의 컴퓨터실이 현재 환경에 비해 오버스펙이며 곰팡이가 슨 것을 보아 잘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을 때, 학생들이 실제 컴퓨터 활용 능력을 높일 수 있으려면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4. 나가며

   개발협력 현장에서 직접 발견한 이런저런 성취들이 뿌듯했으나, 한편으로는 성공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업에도 여러 맹점이 있었음을 깨닫고 다소 진이 빠지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개발협력 업계에서 종사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왜 어려운 우리나라 사람부터 돕지 다른 나라를 돕냐”며 개발협력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말을 쉽게 입에 담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출장에서 개발협력의 필요성과 가치를 절감하게 해줬던 것은 현장에서 보여준 예전 학교 교실 터 사진이었다. 이 학교는 지어진 지가 40년이 훌쩍 넘었는데, 약 2-3년 전만 해도 학생들은 이 교실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뚜옌꽝성에 사나흘 있는 동안에도 더위에 질려버렸는데, 이런 더운 환경에서 전등이나 선풍기도 없이 공부해야 했던 아이들의 상황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막상 문장으로 표현하고 나니 여러 후원 광고 글에서 봤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이를 활자로 읽는 것과 실제 가서 내 감각으로 체험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올바른 개발협력 전문가로서의 자세란 가슴으로는 이때 느꼈던 개발협력의 필요성을 기억하고, 머리로는 최대한 정확하게 성과평가를 시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다시 한번 이런 기회가 허락되었음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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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관리자로서, 신입 석사과정생으로서의 종료평가 참여 후기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석사과정 전종모


   필자는 2024년 7월 7일부터 7월 13일까지, 서울대학교와 KOICA가 함께하는 베트남 뚜옌꽝성 포용적 농촌개발 프로그램 종료평가의 평가단원이자,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양성과정(M&E)의 일환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에 입학한 지 불과 1학기가 지난 시점이며, 막 국제농업개발협력이라는 전공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얕게 형성된 참에 마주하게 된 기회이기도 했었다.

   동시에 본인은 이번 종료사업 평가단의 일원으로 데이터 매니지먼트(data management)라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주로 현장에서 수집한 사진, 영상, 그리고 관련 증빙 문서 등의 1, 2차 자료를 수집하여 관리 및 정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이터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 참여자로서 이번 기회로 얻은 바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해당 후기의 내용이 크게 직책으로써의 느낀 바와 개개인의 학생으로서 느낀 바가 다르기에 이 부분을 구분해서 설명하려 한다.

   우선 업무 자체의 난이도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디어나 문서 자료 데이터의 경우 필자는 문서 및 미디어에 관련된 선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적성의 측면에선 매우 적합했으며, 이에 대한 사전 준비 또한 철저히 할 수 있었다.

   다만 기존의 경험과는 달리 아무래도 현장에서 입수해야 할 주요 자료의 확보가 최우선적인 부분이다 보니 부지런하게 돌아다녀야 했으며, 특히 인프라나 건축과 같은 필자의 비전문 분야의 경우 초청된 전문가분들과의 적극적이고 충분한 토론, 토의 혹은 정보 교환 등의 형태로 의견을 공유하는 작업이 요구되었다. 거기에 더해 문헌 상 기입된 내용과 불일치하거나 누락된 항목이 존재할 시 이를 설명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확보해둬야 하는 자료들이 종종 존재했는데,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문헌조사 결과와 대조할 현지 데이터 자료가 필요했다. 결국 이러한 종합적인 상황별 데이터의 확보를 위해서는 기자제 및 장부와 같은 증빙 문서(실물)를 요청 및 스캔하는 등의 작업이 요구되었다.

   지금까지 언급된 일련의 작업들을 직접 실행하고 완수함으로써, 비단 이번 사업 종료평가에 국한되지 않고 대부분의 실제 현장에서 데이터를 확보 및 관리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크게 체감했다. 특히 뚜옌꽝성 현장 방문 및 인터뷰 스케줄 일정에 속한 대상지 중 본인이 사전 조사를 담당했었던 탄옌 차 작목반(Collaborative Group)의 경우 필자가 PM, PC 보고서를 통해 확보한 정보와는 일정 부분의 차이가 존재했었고, 차후 최종 보고서에 이러한 내용을 기입할 때 핵심 증빙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그 책임감이 가볍지 않음을 체감했다. 궁극적으로는 문헌 조사, 연구와 실제 현장 방문 시 알 수 있는 정보의 차이가 존재했기에, 사업 종료평가가 가진 의의와 중요성을 더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데이터 관리를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있어서, 상당한 ‘집요함’과 ‘통찰력’이 요구된다는 점을 체감하였다. 즉, 단순히 문헌 조사와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찾아내는 현상 검증만이 아닌, 이러한 항목이 왜 다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어떤 결과 혹은 현상이 초래할 수 있을지 등, 현상의 맥락을 끊임 없이 파악하고 그 외의 부분까지를 추론하는 것이다. 다만 이번 사업 종료평가의 경우 단순 농업뿐만이 아닌 보건, 교육, 건축 등을 포함하는 범분야적 사업이다 보니, 필자의 경우 혼자만의 힘이 아닌 각 분야 전문가분들과의 의견 공유와 토의를 통해 얕은 수준으로나마 현상과 자료 해석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술한 역할적 소견과는 달리, 한 명의 대학원생으로써 느낀 본인의 소감을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잠시 옆길로 새자면, 즉 데이터 매니지먼트 역할을 부여받거나 본 평가사업에 참여하기 이전 시점으로 돌아갔을 때 사실 필자는 ODA 사업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다른 전공 동기 및 선배들에 비하면 비교적 현저히 낮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해당 전공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일련의 활동, 즉 봉사활동부터 실제 사업 참여 여부까지 그 어떠한 경험도 없었으며, 이 외에도 관련 전공이나 교양과목조차 학부 시절에 자의적으로 신청한 적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을 포함한 우리의 전공에 진학한 대다수의 대학원생들 중, 의외로 적지 않은 숫자가 이전 학부 전공이나 현 국제농업개발협력 전공과는 다른 배경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고는 한다. 그럼에도 필자의 경우 졸업 직전 학기에 들어서면서 막 산림분야 및 ODA에 관한 관심과 흥미가 생겨 찾아보기 시작했던 점을 감안하면, 입학 당시 필자에게 ODA 사업은 그저 하나의 커다란 컨셉, 즉 거대하고 동시에 공허한 개념에 불과했다.

   그러나 입학 전 수강 신청을 하는 시점에서 해당 강좌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본인은 이번 커리큘럼을 통해 ODA 사업에 대한 본격적이고 심층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예상은 적중했으며, 실제로 1학기에는 이론적 배경 및 ODA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 그리고 실제 관련 업계에 종사하시는 전문가분이나 외부강사를 초청하여 매우 구체적인 디테일들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들음으로써 ODA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해상도를 대폭 상승시킬 수 있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이론과 제3자로부터 얻은 지식이기에 현실세계에서 지금까지 배운 개념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어떠한 세부 내용(요인)들이 존재하며 서로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 등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요소들의 부재로 인한 한계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번 현장 답사를 통한 사업 종료평가 경험은 확실히 본인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동안 지난 학기에서 쌓아왔던 이론적인 베이스에 기반하여 이번 베트남 현지조사 경험들을 대입했을 때, 비로소 PDM이든 변화이론이든 지금까지 필자가 배워왔던 모든 개념들이 보다 가시화되고 명료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본인과 같이 실제 ODA 관련 사업에 대한 기초나 경험이 전무한 입장에서는, 이번 현지 방문 및 답사는 매우 귀중한 경험인만큼 배운 점과 스스로 개선할 보완점, 그리고 차후 ODA 사업에 대한 동기부여 등 다방면적인 측면으로 훌륭한 피드백을 제공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시에 실질적인 데이터 관리자로써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얼마나 전문가에 가깝게 수행해내었는가에 대한 여부에서는, 지극히 필자는 아직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결국 이러한 ‘경험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필자에게 있어 이번 경험은 마치 0에서 1로의 전환이자 과정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의 1에서부터 10으로 발전, 즉 석사과정 및 그 이후의 여정과 방향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베트남 PMC사업 종료평가 경험을 포함한 1년 동안의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양성과정 커리큘럼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현재까지 매우 높다고 본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수강생들이 평가하고 있는데, 필자는 이러한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결국 ‘관계’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이번 1년간의 커리큘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학과 교수님들을 비롯한 선배 학우분들의 외부 초청 강사(전문가)와의 커넥션(인연)들이 해당 교과목이 가진 성과의 메리트를 극대화시킨 결정적인 요인들 중 하나였는데, 그 이유는 그 커넥션으로 인해 초청된 거의 대다수의 외부 강사들이 실제로 국내외 국제개발협력 분야와 유관하거나, 활동을 했었고, 혹은 현직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본인에겐 매우 큰 호재였으며, 그 배경에는 필자가 재학 중이나 혹은 석사과정 수료 이후 UN 본사나 산하기구에서 인턴쉽 혹은 정규직으로써 근무해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은 교수님, 선배, 혹은 동기 학우들로부터 그들이 맺어온 커넥션의 덕택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번 사업 종료평가를 다녀온 후 새로운 목표가 생겼는데, 그 목표인 즉슨 혜택을 받은 만큼 필자 또한 국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커넥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먼 미래에 후배들과 학교 차원으로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선배 혹은 동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걸맞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인맥을 형성하고자 한다. 물론 이 모든 것 또한 스스로의 노력에 달렸을 터이니, 이번 계절학기 이후로도 더더욱 정진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글을 맺으며, 필자는 다시 한번 이번 베트남 뚜옌꽝성 종료사업 평가에 참여할 수 있어 큰 행운이라 생각하며,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교수님과 학우분들을 포함한 모든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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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옌꽝성 교육 인프라 개선 및 역량강화에 대하여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박사과정 황희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교는 공동체의 기반을 다지는 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종교에 따라, 민족에 따라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교가 가지는 기능과 그 의미는 비슷하다. 학교는 단순히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의 역할을 넘어서 전통과 문화의 전승을 도우며 공동체 구성원 간 이해심을 기르고 포용력을 배울 수 있는 장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렇듯 학교는 과거와 현재를 지식과 전통으로 이어주면서, 동시에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가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이처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 부문에 베트남도 지속적인 투자를 해오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주도적인 지원 아래, 현재 베트남은 GDP의 약 5%를 교육에 지출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통해 최근 몇 년 동안 베트남의 교육 시스템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며, 그중에서도 초등 교육 및 중 등 교육의 등록률 증가는 주목할 만하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베트남의 학생 수는 약 2,500만 명으로, 그중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받는 학생이 약 1,820만 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이 규모는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특히 초등 교육의 경우에는 베트남에서 의무 교육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초등 교육의 중요성이 정부 차원에서 강조되고 있으며, 초등 교육을 이 수하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베트남 북부 농촌 지역의 교육 현황은 도시에 비해서 교육 서비스 접근 측면에서 열악한 편으로 파악된다. 기본적으로 학교 시설의 노후화로 인하여 학교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열악한 교육 인프라로 인해서 베트남의 북부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2부제로 시행되는 학교 시스템을 통해서 학교에 다녀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거나, 교사 수의 부족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실정에 처해있다. 또한 북부 농촌지역 학생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속한 경우가 많아서 조기 노동에 동원되는 등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 밖에도 여성 교육에 대한 저조한 인식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문제로 인해 농촌 지역의 교육 시스템은 도시에 비해 초등학교 등록률, 상급 학교 진학률, 교육 접근 기회 등의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베트남 정부와 다양한 비정부기구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여, 농촌 지역의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해오고 있다. 코이카의 ‘베트남 뚜옌꽝성 포용적 농촌개발 프로그램’도 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농촌개발 프로그램 가운데 농촌의 교육 실태를 개선하고 교육 인프라를 구축할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본 프로그램을 통해 뚜옌꽝성 정체에 교육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총 6개의 학교를 신설했다. 구체적으로 180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서는 수업 역량 교육을 수행하고, 학교 관리자의 관리역량 강화와 관련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또한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는 교실 건축 및 기초교육 기자재를 지원하였다.


이번 출장을 통해 평가팀은 베트남 뚜옌꽝성의 초등 교육 수혜 기관 6곳 가운데 2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현장에서 관찰한 교육 지원 프로그램의 성과에 대해서 크게 시설 인프라와 교사 역량 강화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시설 인프라 구축에 관하여, 공통적으로 신축된 두 학교 건물은 2층짜리 건물로, 동일한 규격을 갖추고 있다. 인프라 구축 사업을 통해 교실 및 화장실 등 시설의 수가 증가했고, IT 교실이 새로 만들어졌다. 시설과 관련해서 해당 학교에 다니는 학생 및 교직원의 만족도도 높았다. 예를 들어, 기존 학교에는 화장실이 남녀 각각 1칸씩 있었는데, 신식 학교에는 화장실에 최소 3개의 칸이 남녀 화장실에 각각 마련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에 불편함이 일정 부분 해소되었다.


그러나 학교 내부 시설 및 기능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첫 번째 학교의 경우에는 이러한 시설 이외에도 도서관이나 음악실 등 다양한 특수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나, 두 번째 학교는 이와 다르게 특수 시설들을 갖추고 있지 않은 점에서 같은 성 내에서도 동등한 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한편,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이러한 실구성은 학교 측의 요청에 따라서 특수 교실의 수를 줄이고 일반 교실의 수를 늘려서 교육 공간을 실용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을 수도 있다고 한다. 즉, 학교의 사정을 고려하여 특수 교실의 수를 조절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렇듯 학교 신설을 통해서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나, 여전히 시설적 측면에서 개선점으로 여겨지는 사항들이 있었다. 평가팀이 방문했던 두 학교 모두 운동장 지붕을 요청하였다. 뚜옌꽝성의 농촌 지역은 높은 온도와 습도로 인해서 야외활동을 하기에 힘든 환경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환경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운동장에 지붕을 설치한다면 학생들의 쾌적한 야외활동을 보장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학교 측에서는 에어컨 설치를 요청하였다. 현재 학교에는 선풍기만 배치되어 있는데, 에어컨도 설치한다면 온도뿐만 아니라 습도도 조절되어서 학습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역량 강화 측면에서는 교사들이 수업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통해서 교수법의 개선과 더불어 학생들의 지도 역량도 개선되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대표적으로 상급 학교 진학률이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베트남 북부의 농촌 지역에서는 중등학교 진학률이 도시의 학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으며, 특히 뚜옌꽝성에 속한 학교들의 경우, 중등학교 진학률이 80%에서 85%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통해 역량이 강화되면서 학생들의 상급 학교 진학률이 90%를 상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밖에도 여학생의 수도 증가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학교의 시설 인프라 및 역량 강화로 인하여 여러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는 학부모회 운영이다. 학교 신설 이전에는 학부모회 운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학교가 신설되면서 자발적으로 학부모가 학교 운영에 기여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공동 펀드 문화는 빈민층을 제외하고 학부모들이 학교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교실 커튼 설치, 실내 디자인 등 학교 미화에 투자하고, 학생들의 학업 증진 및 다양한 교내외 활동을 지원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주목할 만한 점은, IT 접근성 확대에 따라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였다. 일례로, 한 학생은 이번 프로그램에서 지원해 준 IT 기기를 사용하면서 IT 디자이너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현대화된 교육과 신식 기기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도 본 프로그램의 의의를 지닌다.


실제로 현장을 방문했을 때, 신설 건물과 기존 건물을 한 번에 볼 기회가 있었다. 기존 건물의 경우에는 1980년대에 지어진 목재 건물로, 창문에는 유리가 없어서 비와 바람이 새는 구조였다. 교육 인프라 이해관계자 인터뷰를 통해서 전술한 점들이 개선된 신축 건물에 대해 학생 및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을 파악했다.


본 농촌개발 프로그램을 통해서 시설이 개선되어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몇 가지 개선점이 있다. 첫 번째로는 학교 운동장이 아스팔트로 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체육 활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기에는 부적절한 환경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운동장의 경우에는 모래, 인공 잔디, 쿠션 등 다양한 형태의 운동장이 있어서 학생들의 체육 활동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아스팔트 운동장의 경우에는 운동장에 열이 전달되기 쉬우며, 학생들이 넘어진다면 큰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다. 초등학생이 사용하는 운동장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형태라고 생각했다. 한편, 기후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우기일 경우에는 모래 운동장보다는 아스팔트 운동장이 관리하기가 용이하여 아스팔트 운동장을 선호한다는 현지 사정을 확인했다. 그러나 운동장에 지붕을 설치할 경우, 기후적인 요인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공 잔디 운동장을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운동장 인프라 구축과 함께 전반적으로 체육 관련 교육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축구와 농구 등 기본적인 운동을 배울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고, 이 밖에도 다양한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비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 성장기에 신체 활동은 신체 건강 및 정신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육 활동과 관련한 전반적인 시설 보충이 요구된다.


체육 시설 이외에, 학생들의 안전 측면에서 등하교를 위한 인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교육 이해관계자 인터뷰를 통해서 통학 수단을 조사해 봤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걸어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다. 걸어서 통학하는 학생들을 위한 인도를 설치할 수 있다면 학생들의 안전에 도움이 될 것이며,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신뢰도도 향상될 것으로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교실 증축을 통해 2부제에서 1부제로 학교를 운영하는 만큼,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학생들의 창의성을 기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창의성 측면에서, 지원받은 IT 기기를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해외 초등학교의 경우, 아스팔트 운동장에 분필 등으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 놓기도 하는데 현장 방문한 학교에서는 이러한 활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도 분필로 고양이나 꽃을 그려 놓기도 하였으며, 러시아 놀이터에도 분필로 땅따먹기를 하거나 낙서를 하는 광경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활동을 찾아볼 수 없었다. 땅따먹기와 같이 학우들이 어울려서 함께 하는 놀이를 배울 수 있다면 학생들의 공동체 소속감을 높일 수 있고 정서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학문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등학교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단체 예술 활동을 통해서 협동심을 기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방과 후 학교에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초등학교의 기능은 기본적인 학문을 익히고 예절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학우들과의 추억과 다양한 문화 활동들은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들어 본 요리, 친구와 처음으로 함께 해 본 운동 등 무엇이든 처음으로 도전하는 곳이 바로 초등학교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긴장과 성취감은 이후 삶에서 어떠한 것에도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갖게 한다. 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것만큼 삶의 동기부여를 주는 것을 찾기 어렵다. 본 프로그램을 통해 베트남의 북부 농촌 지역 학생들도 신식 학교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쌓고, 이러한 경험들이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유년 시절을 보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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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의 나라, 말라위에서 빈곤 해결의 

희망을 보다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지 성 태 교수

 

최빈국 말라위

말라위는 동아프리카에 위치하며 탄자니아, 잠비아, 모잠비크에 둘러싸인 내륙국가이며 남한과 비슷한 국토면적에 약 2,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국가이다. 그리고 1인당 GDP가 약 600달러로 국민 대다수가 빈곤선(1일 1.9달러) 아래에서 생활하는 최빈국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국민이 삼시세끼를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대빈곤에 처해 있다.


지속가능농업 담론

나라명도 익숙하지 않은 말라위에서 지속가능농업 실천 및 협동조합 중심의 가치사슬 개선을 통해 농민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ODA 사업이 추진되었다. 사업은 수도인 릴롱궤(Lilongwe)에서 약 130km 떨어진 카슝구(Kasungu)의 3개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최빈국에서 지속가능농업의 일환으로 보전농법(conservation farming)이 보급되었고 많은 농가들이 자연멀칭, 최소 경운, 윤작 등을 실천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에게 있어 보전농법은 선진국에서의 탄소 감축 등 환경 이슈에 기반한 담론과는 거리가 있어고, 투입재 부족에 따른 토양 관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국책으로 인식되는 듯 보였다. 이는 개별 농가의 영농 여건, 국가별 농업발전 수준에 따라 지속가능농업 담론의 차이가 존재함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옥수수 왕국

말라위의 8월, 추수가 모두 끝난 들녘은 황량함 그 자체였고, 다음 우기 때까지 아프리카 특유의 붉은 토양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측은하기까지 했다. 추수의 흔적 속에서 발견한 것은 얼마전까지 그 황량한 들녘에서 옥수수가 재배되었다는 것이다. 수도 릴롱궤에서 카슝구까지 이동 중, 다시 3개 사업지 방문 중 시야에 들어온 농지 대부분이 옥수수로 가득 찼을 것이고, 그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가히 장관이다. 말로만 듣던 미국의 콘벨트(Corn-belt) 풍경과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옥수수는 말라위의 주식일뿐만 아니라 대두와 더불어 주요 수출품이기도 하다. 말라위 사람들은 옥수수 가루를 끌여 묽은 반죽처럼 만든 시마(Nsima)를 주식으로 한다.

 

인간의 위대한 노동

끝없이 펼쳐진 들녘은 개간의 흔적이 있었고 농지 중간에 듬성듬성 남겨진 나무는 기존에 숲이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였다. 만약 환경전문가였다면 무분별한 벌목에 의한 환경 파괴를 비판했겠지만, 그 드넓은 숲을 경지로 개간한 말라위 농민의 생존을 위한 사투에 경외를 표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기가 시작되기 전 씨앗 파종을 위해 그 들넓은 땅을 농기계의 도움 없이 곡갱만으로 뒤엎어 붉은 속살을 드러낸 대지의 모습에서 인간 노동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의 위대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농민이 굶주림에 처해있다는 현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비료 50kg의 기적

평가 대상 사업에서는 보전농법 적용을 유도하고 공동경작지 0.5에이커(약 600평)에 투입할 50kg의 비료와 일정량의 계분을 선지급하였으며, 사회적기업이 옥수수 수매대금에서 정산하여 농가가 그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였다. 참여농가들이 사용시기와 사용량에 대한 기술지도 하에 투입재를 제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 효과는 가희 혁명적이었다. 옥수수 생산성은 크게 증가해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 사실 ‘소득 증대’란 표현보다 ‘소득 창출’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본 사업이 추진되기 전에는 옥수수 생산량이 자가 소비량을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했으나 이제는 많은 잉여분이 발생하여 소득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소득 증대는 곧 주민의 식생활 변화로 이어졌다. 하루 한끼 해결하기도 어려웠던 수혜농가들이 이제는 하루 세끼를 모두 먹고 거기에 6대 영양소(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물)를 골고루 섭취한다는 말에 감동의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뿐만 아니라 소득 증대는 자녀 교육 지원, 생활환경 개선이나 자산 증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즉, 자녀 학비를 납부할 여유가 생겼고, 초가지붕을 양철지붕으로 교체하고, 심지어 집을 신축한 농가도 있었으며, 소나 염소 등의 가축을 구입하고, 이동수단인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장만한 농가도 적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수혜농가들이 농업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는 농업 투자가 소득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수혜농가가 소득의 많은 사용처 중에서도 비료 구입을 1순위로 꼽았다는 점에서 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수혜농가가 마을신용그룹(Village Saving and Loan Association)에 저축을 하여 투자금을 마련하고 자연재해 등의 위험요인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적절한 개입과 견인차 역할의 중요성

국제개발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혜자의 핵심 니즈(needs)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으로 성과를 도출하고 종국에는 수혜자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 사업은 주식인 옥수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비료 투입 및 적절한 사용을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획기적인 소득 증대 및 식생활 개선으로 이어졌고, 주민의 영농 접근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성과 배경에는 수혜농민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협동조합, 6년간 수혜자들과 밀착하여 사업을 이끌어준 NGO와 투입재 공급부터 생산물의 안정적 판로까지 해결해준 사회적기업의 견인차 역할이 매우 컸다.

 

본 사업 모델이 말라위 전역에 확산되어 모두가 영양가 있는 삼시세끼를 매일 먹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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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농업협동조합 발전의 가능성을 보다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지 성 태 교수

 

네팔에도 평야가 있다?

네팔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세계의 지붕’으로 일컬어지는 히말라야산맥 혹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일 것이다. 이에 네팔은 산악지대로만 이루졌다는 인식이 대부분의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인식만은 아니다. 네팔의 국토 중 북부지역의 산악지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외에 약 40%는 중부지역의 구릉(hilly)지대, 약 20%는 남부지역의 평야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평야지대는 ‘떠라이(Terai)’라고 불리며 고온다습한 기후와 비옥한 땅으로 네팔의 식량창고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인도와 접경을 마주하고 있어 지평선이 남쪽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평야지대에서는 주로 쌀, 밀 등 식량작물과 바나나, 사탕수수 등 열대작물을 생산한다.

 

인연은 계속된다

지난 1월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 봉사단을 이끌고 네팔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봉사활동은 엄홍길휴먼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3차 룸비니(Lumbini) 휴먼스쿨에서 진행되었다. 룸비니는 부처님 탄생지이며, 그 유적지인 마야 데비(Maya Devi)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불교 성지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평가대상 ODA 사업이 룸비니지역에서도 추진되었다. 2014년 나왈팔라시(Nawalparasi district)를 대상으로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5년 네팔의 행정구역이 재구획됨으로써 나왈팔라시는 룸비니주의 간다키(Gandaki)주의 나왈펄(Nawalpur district)과 룸비니주의 파라시(Parasi district)로 구분되었다. 카투만두에서도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걸리는 룸비니를 재차 방문했다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인연’이란 표현이 더 맞을 듯 싶다.

 

물과의 전쟁

사업대상지인 나왈팔라시는 지대가 낮고 관배수시설이 취약하여 우기에는 물 범람으로 수해 피해가 잦고 겨울철에는 수자원 이용이 어려운 지역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가별 경작면적이 작아 쌀 생산량이 자급하기에도 부족한데 주곡인 벼가 폭우로 침수되면 농가는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겨울에는 밀, 유채 등의 재배가 가능하지만 지하수를 이용한 관수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과수, 채소 등의 경제작물 재배 확대를 통한 영농 다각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도 농업용수 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평가대상 사업은 포용적 농촌개발 사업(Inclusive Rural Development Project)으로 기초인프라, 조건부인프라, 주민제안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기초인프라 사업에서는 고심도 관정, 주민제안 사업에서는 중심도 혹은 천심도 관정 지원이 많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조건부인프라 사업에서는 홍수대피소, 도로, 교량 등 마을인프라 지원이 있었고, 주민제안 사업에는 채소, 바나나, 종자, 낙농, 양어 등의 고소득 작목 재배 지원과 농기계 지원, 여성과 청년 취창업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되었다.


농업 발전의 구심점, 협동조합

관정 지원으로 벼 파종시기가 앞당겨지고 생산량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량 증가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확이 빨라지면서 한국식 ‘보릿고개’에 쌀을 구매할 필요 없이 자체 생산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본 사업을 통해 조직된 협동조합이 지역의 농업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농기계 임대 서비스가 이루어져 회원들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었고, 사업 이후에 수익금으로 농기계를 추가 구매하기도 하였다. 협동조합은 비료 판매 허가증을 취득하여 회원들에게 시가보다 저렴한 비료를 제공하였고, 그린 멀칭, 종자, 우유 보조금, 재해보험 등 정부의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농가의 고리대 의존도를 크게 낮추었다. 채소, 바나나, 종자, 낙농 등을 생산하는 농가들로 구성된 그룹(작목반)도 협동조합에 소속됨으로써 조합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본 사업이 지역의 협동조합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고, 네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연계되면서 비교적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본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관정 지원으로 채소 간작(intercopping)을 실천하여 소득을 극대화하는 농가, 해외에서 돌아와 바나나 작목반에 참여한 청년농부, 본 사업을 계기로 가축보험에 가입해 피해를 최소화한 농가, 소 사육기술을 습득하여 위탁사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농가, 논에 양어장을 만들어 논농사보다 몇 배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고소득 농가, 취창업 교육을 받고 오토바이 수리점을 개업한 청년, 봉제기술로 제품을 만들어 숍을 직접 운영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진 여성농업인 등 적지 않은 성공스토리를 찾을 수 있다.


지방정부 거버넌스의 역할

농촌개발 사업에서 주민 참여가 필수적인 가운데, 지방정부의 거버넌스가 주민 참여를 유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방정부에서 매칭펀드를 제공하여 시설 건립과 기기 구입에 협력하였고, 협동조합에 공동경작지를 지원하여 수익사업의 기회를 주었고, 각종 보조금 프로그램을 본 사업과 연계하여 참여농가에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직간접적인 혜택은 지역주민의 참여를 견인하기에 충분했다. 군(Municipality)과 면(Ward) 정부의 관심과 지원역량에 따라 마을별 사업 성과 및 지속가능성이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

사업지가 인도 국경도시와 경제생활권을 공유하고 있어 네팔측에도 국경무역의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네팔에 결코 유리하지는 않았다. 인도에서 저가의 상품이 유입되어 네팔측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사업지에서 새로운 소득작물 보급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지원과 함께 판로 확보에 대한 고민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사업지가 홍수 등의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는 점은 사업의 효과성과 사후관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취약한 농가는 홍수로 농지가 수몰되면 식량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자연재해가 불가항력적인 리스크라면 농업보험 가입을 장려하거나 저축을 유도함으로써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네팔은 농업협동조합이 발전하는 초기단계로 향후 양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한국의 농업협동조합 발전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양적 성장과정을 거쳐 점차 운영시스템이 체계화되었고, 그 배경에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었고, 거의 모든 농가가 회원이 되었다. 네팔의 경우도 초기에는 농업협동조합이 자생적으로 조직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제공하는 서비스 대상에서 소외되는 농가가 최소화되록 관리하고, 궁극적으로 질적 성장을 위한 제도 정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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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사업이 키르키스스탄의 아샤르    정신을 깨우다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지 성 태 교수

 

체제전환국의 비애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하며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소위 ‘스탄’ 국가들 중에서도 영토가 상대적으로 작고 소득수준도 낮은 편이다. 농업부문에서는 축산업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경종업에서는 밀, 보리, 옥수수 등의 곡물과 과일을 주로 생산한다. 구소련 시대에 각 연방국가가 각자의 산업 비교우위에 기초해 분업을 실시했으며, 키르기스스탄은 축산업을 바탕으로 다른 연방국가에 육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구소련 시대 축산업에만 집중하고 다른 산업의 기반은 전무하다시피 했던 키르기스스탄은 소련 붕괴 이후 다른 연방국가에 비해 그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의식주를 비롯해 모든 사회서비스를 국가에 의존해왔던 개개인은 경제활동 기회를 박탈당해 생계를 걱정해야 했고, 남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러시아를 비롯한 경제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주변국으로 이주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해외에서 번 돈은 모국으로 송금되에 가족의 생계 유지 및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였다. 송금된 외화의 규모가 국가 전체 재정의 약 30%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젊은 여성들도 타지나 해외로 나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청장년층이 빠져나간 농촌지역에는 아이, 여성, 노인 위주로 남게 되어 마을의 공동체의식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과일의 천국

키르기스스탄의 국토는 대부분 산악지대와 구릉지대로 구성되어 있고, 비쉬켁(Bishkek)과 오쉬(Osh)와 같이 규모가 큰 도시 주변으로 평야지대가 존재한다. 마을이 형성된 곳은 어김없이 가용할만한 수자원과 농경지가 있었다. 심지어 마을마다 적지 않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방사림 혹은 방풍림 역할을 하고, 농지 주변으로 줄지어선 미루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일종의 혼농임업(agroforestry) 실천모델이 되었다. 즉, 수자원과 식량 접근성이 양호한 곳에 도시와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평야지대에서는 주식의 원료인 밀과 보리, 사료작물인 옥수수와 조사료, 경제작물인 면화와 연초 등을 생산한다. 상대적으로 토질이 나쁜 지역에서는 사과, 체리, 살구, 자두 등의 과수를 식재하였다. 수박과 멜론(드냐) 등의 과채류, 호두 등 다양한 견과류도 키르기스탄의 특산품이다. 다만, 지역별 기후, 토질 등의 생산 여건의 차이, 생산기술의 차이, 품종의 차이로 품질의 표준화가 어려워 시장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아샤르(Ashar)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모두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다시 말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인간의 생존을 위해 타인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한국에도 이웃과 협력하는 두레, 품앗이 등의 전통이 있다. 과거 지역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으로 노동력이 유일한 상황에서 농가들은 이웃에서 ‘품’을 빌려 농사를 지었고 다시 ‘품’으로 이를 되갚아주었다. 또한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가가호호 노동력이나 금전, 실물을 제공하여 공동으로 대응하던 풍습이 있었다. 어쩌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같은 국난을 겪으면서 이러한 전통이 다소 약화되었고, 공동체의식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1970년대 ‘근면, 자조, 협동’의 기치 아래 추진된 새마을운동은 그동안 위축되었던 공동체의식을 발현되시키고 주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욕을 고취시키고 마을리더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아샤르는 한국의 두레와 유사한 커뮤니티 중심의 공동체의식이다. 구소련이 해체되어 키르기스스탄의 국가경제가 와해되면서 마을공동체도 약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즉, 마을에서 청장년층이 이탈하면서 공동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었고, ‘아샤르’ 정신을 발휘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최근 지역사회가 비교적 안정화되고 외지에 나갔던 마을구성원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마을기금이 조성되어 ‘아샤르’ 정신도 점차 회복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새마을운동과 아샤르의 접목

이러한 가운데 KOICA의 새마을기반 시범사업은 한국의 새마을운동 경험을 기반으로 키르기스스탄의 ‘아샤르’ 정신을 발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1단계 사업(기초환경)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마을의 최우선 인프라사업을 선정하여 추진하였고, 이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은 ‘아샤르’ 정신을 발휘하여 노동력을 자발적으로 제공하거나 노동력 제공이 어려운 경우 현금 혹은 현물로 이를 대체하였다. 여성들도 식사 제공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마을의 숙원사업을 주민들의 힘으로 완수했다는 성취감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에서도 그러했듯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시켰다. 이는 2단계(생산기반), 3단계(소득증대) 사업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1단계 사업의 성과와 2단계 제안사업을 기초로 30개의 마을을 기초마을과 자조마을로 구분하였다. 또한 2단계 사업의 성과와 3단계 제안사업을 기초로 9개의 자립마을을 선정하여 3단계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마을별로 경합을 유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업 실행기관에서는 가이드라인만을 제공하고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마을주민들의 주체역량(Ownership) 강화를 유도하였고, 더 나아가 마을공동체의 회복 및 사회적자본의 확장을 목표로 하였다.


성과의 확산

마을마다 사업 여건이 상이하기 때문에 그 성과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결국 주민들의 공동체의식, 마을대표의 리더십, 지방정부의 지원역량과 참여의지가 사업 성과를 좌우하였다. 마을기금 혹은 정부 예산을 사업비에 매칭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마을대표는 국내외 새마을연수 결과를 마을주민과 공유하였고, 우수사례를 다른 마을에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지방정부도 있었다. ‘아샤르’ 정신 회복은 사업의 성과 확산에도 도움이 되었다. 본 사업과 별개로 마을주민 주도 하에 도로를 개보수하거나 사방공사를 진행하였고, 지방정부의 도움을 받아 중앙정부 혹은 국제기구의 지원사업을 신청하여 채택되는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사업을 계기로 마을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한 마을이 있는가 하면, 본 사업의 효과를 보고 이웃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도 있었다.

 

고령화와 세대 차이

본 사업을 통해 커뮤니티 단위에서 ‘아샤르’ 정신의 발현으로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이는 향후 키르기스스탄 농촌발전을 위한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지역소멸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도 대두된 것처럼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농촌고령화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세대간 의식의 차이도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보인다. 즉, 공산주의체제를 겪은 구세대와 자본주의체제에서만 살아온 신세대 간의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스텝지역에서도 끊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유목생활과 농경활동을 병행하며 살아왔고 공동체의식이 생존을 위한 또다른 원동력이었기에 ‘아샤르’의 힘을 다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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