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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의 나라, 말라위에서 빈곤 해결의 

희망을 보다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지 성 태 교수

 

최빈국 말라위

말라위는 동아프리카에 위치하며 탄자니아, 잠비아, 모잠비크에 둘러싸인 내륙국가이며 남한과 비슷한 국토면적에 약 2,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국가이다. 그리고 1인당 GDP가 약 600달러로 국민 대다수가 빈곤선(1일 1.9달러) 아래에서 생활하는 최빈국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국민이 삼시세끼를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대빈곤에 처해 있다.


지속가능농업 담론

나라명도 익숙하지 않은 말라위에서 지속가능농업 실천 및 협동조합 중심의 가치사슬 개선을 통해 농민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ODA 사업이 추진되었다. 사업은 수도인 릴롱궤(Lilongwe)에서 약 130km 떨어진 카슝구(Kasungu)의 3개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최빈국에서 지속가능농업의 일환으로 보전농법(conservation farming)이 보급되었고 많은 농가들이 자연멀칭, 최소 경운, 윤작 등을 실천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에게 있어 보전농법은 선진국에서의 탄소 감축 등 환경 이슈에 기반한 담론과는 거리가 있어고, 투입재 부족에 따른 토양 관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국책으로 인식되는 듯 보였다. 이는 개별 농가의 영농 여건, 국가별 농업발전 수준에 따라 지속가능농업 담론의 차이가 존재함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옥수수 왕국

말라위의 8월, 추수가 모두 끝난 들녘은 황량함 그 자체였고, 다음 우기 때까지 아프리카 특유의 붉은 토양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측은하기까지 했다. 추수의 흔적 속에서 발견한 것은 얼마전까지 그 황량한 들녘에서 옥수수가 재배되었다는 것이다. 수도 릴롱궤에서 카슝구까지 이동 중, 다시 3개 사업지 방문 중 시야에 들어온 농지 대부분이 옥수수로 가득 찼을 것이고, 그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가히 장관이다. 말로만 듣던 미국의 콘벨트(Corn-belt) 풍경과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옥수수는 말라위의 주식일뿐만 아니라 대두와 더불어 주요 수출품이기도 하다. 말라위 사람들은 옥수수 가루를 끌여 묽은 반죽처럼 만든 시마(Nsima)를 주식으로 한다.

 

인간의 위대한 노동

끝없이 펼쳐진 들녘은 개간의 흔적이 있었고 농지 중간에 듬성듬성 남겨진 나무는 기존에 숲이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였다. 만약 환경전문가였다면 무분별한 벌목에 의한 환경 파괴를 비판했겠지만, 그 드넓은 숲을 경지로 개간한 말라위 농민의 생존을 위한 사투에 경외를 표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기가 시작되기 전 씨앗 파종을 위해 그 들넓은 땅을 농기계의 도움 없이 곡갱만으로 뒤엎어 붉은 속살을 드러낸 대지의 모습에서 인간 노동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의 위대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농민이 굶주림에 처해있다는 현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비료 50kg의 기적

평가 대상 사업에서는 보전농법 적용을 유도하고 공동경작지 0.5에이커(약 600평)에 투입할 50kg의 비료와 일정량의 계분을 선지급하였으며, 사회적기업이 옥수수 수매대금에서 정산하여 농가가 그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였다. 참여농가들이 사용시기와 사용량에 대한 기술지도 하에 투입재를 제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 효과는 가희 혁명적이었다. 옥수수 생산성은 크게 증가해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 사실 ‘소득 증대’란 표현보다 ‘소득 창출’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본 사업이 추진되기 전에는 옥수수 생산량이 자가 소비량을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했으나 이제는 많은 잉여분이 발생하여 소득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소득 증대는 곧 주민의 식생활 변화로 이어졌다. 하루 한끼 해결하기도 어려웠던 수혜농가들이 이제는 하루 세끼를 모두 먹고 거기에 6대 영양소(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물)를 골고루 섭취한다는 말에 감동의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뿐만 아니라 소득 증대는 자녀 교육 지원, 생활환경 개선이나 자산 증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즉, 자녀 학비를 납부할 여유가 생겼고, 초가지붕을 양철지붕으로 교체하고, 심지어 집을 신축한 농가도 있었으며, 소나 염소 등의 가축을 구입하고, 이동수단인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장만한 농가도 적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수혜농가들이 농업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는 농업 투자가 소득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수혜농가가 소득의 많은 사용처 중에서도 비료 구입을 1순위로 꼽았다는 점에서 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수혜농가가 마을신용그룹(Village Saving and Loan Association)에 저축을 하여 투자금을 마련하고 자연재해 등의 위험요인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적절한 개입과 견인차 역할의 중요성

국제개발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혜자의 핵심 니즈(needs)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으로 성과를 도출하고 종국에는 수혜자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 사업은 주식인 옥수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비료 투입 및 적절한 사용을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획기적인 소득 증대 및 식생활 개선으로 이어졌고, 주민의 영농 접근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성과 배경에는 수혜농민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협동조합, 6년간 수혜자들과 밀착하여 사업을 이끌어준 NGO와 투입재 공급부터 생산물의 안정적 판로까지 해결해준 사회적기업의 견인차 역할이 매우 컸다.

 

본 사업 모델이 말라위 전역에 확산되어 모두가 영양가 있는 삼시세끼를 매일 먹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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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농업협동조합 발전의 가능성을 보다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지 성 태 교수

 

네팔에도 평야가 있다?

네팔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세계의 지붕’으로 일컬어지는 히말라야산맥 혹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일 것이다. 이에 네팔은 산악지대로만 이루졌다는 인식이 대부분의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인식만은 아니다. 네팔의 국토 중 북부지역의 산악지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외에 약 40%는 중부지역의 구릉(hilly)지대, 약 20%는 남부지역의 평야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평야지대는 ‘떠라이(Terai)’라고 불리며 고온다습한 기후와 비옥한 땅으로 네팔의 식량창고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인도와 접경을 마주하고 있어 지평선이 남쪽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평야지대에서는 주로 쌀, 밀 등 식량작물과 바나나, 사탕수수 등 열대작물을 생산한다.

 

인연은 계속된다

지난 1월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 봉사단을 이끌고 네팔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봉사활동은 엄홍길휴먼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3차 룸비니(Lumbini) 휴먼스쿨에서 진행되었다. 룸비니는 부처님 탄생지이며, 그 유적지인 마야 데비(Maya Devi)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불교 성지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평가대상 ODA 사업이 룸비니지역에서도 추진되었다. 2014년 나왈팔라시(Nawalparasi district)를 대상으로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5년 네팔의 행정구역이 재구획됨으로써 나왈팔라시는 룸비니주의 간다키(Gandaki)주의 나왈펄(Nawalpur district)과 룸비니주의 파라시(Parasi district)로 구분되었다. 카투만두에서도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걸리는 룸비니를 재차 방문했다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인연’이란 표현이 더 맞을 듯 싶다.

 

물과의 전쟁

사업대상지인 나왈팔라시는 지대가 낮고 관배수시설이 취약하여 우기에는 물 범람으로 수해 피해가 잦고 겨울철에는 수자원 이용이 어려운 지역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가별 경작면적이 작아 쌀 생산량이 자급하기에도 부족한데 주곡인 벼가 폭우로 침수되면 농가는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겨울에는 밀, 유채 등의 재배가 가능하지만 지하수를 이용한 관수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과수, 채소 등의 경제작물 재배 확대를 통한 영농 다각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도 농업용수 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평가대상 사업은 포용적 농촌개발 사업(Inclusive Rural Development Project)으로 기초인프라, 조건부인프라, 주민제안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기초인프라 사업에서는 고심도 관정, 주민제안 사업에서는 중심도 혹은 천심도 관정 지원이 많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조건부인프라 사업에서는 홍수대피소, 도로, 교량 등 마을인프라 지원이 있었고, 주민제안 사업에는 채소, 바나나, 종자, 낙농, 양어 등의 고소득 작목 재배 지원과 농기계 지원, 여성과 청년 취창업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되었다.


농업 발전의 구심점, 협동조합

관정 지원으로 벼 파종시기가 앞당겨지고 생산량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량 증가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확이 빨라지면서 한국식 ‘보릿고개’에 쌀을 구매할 필요 없이 자체 생산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본 사업을 통해 조직된 협동조합이 지역의 농업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농기계 임대 서비스가 이루어져 회원들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었고, 사업 이후에 수익금으로 농기계를 추가 구매하기도 하였다. 협동조합은 비료 판매 허가증을 취득하여 회원들에게 시가보다 저렴한 비료를 제공하였고, 그린 멀칭, 종자, 우유 보조금, 재해보험 등 정부의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농가의 고리대 의존도를 크게 낮추었다. 채소, 바나나, 종자, 낙농 등을 생산하는 농가들로 구성된 그룹(작목반)도 협동조합에 소속됨으로써 조합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본 사업이 지역의 협동조합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고, 네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연계되면서 비교적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본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관정 지원으로 채소 간작(intercopping)을 실천하여 소득을 극대화하는 농가, 해외에서 돌아와 바나나 작목반에 참여한 청년농부, 본 사업을 계기로 가축보험에 가입해 피해를 최소화한 농가, 소 사육기술을 습득하여 위탁사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농가, 논에 양어장을 만들어 논농사보다 몇 배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고소득 농가, 취창업 교육을 받고 오토바이 수리점을 개업한 청년, 봉제기술로 제품을 만들어 숍을 직접 운영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진 여성농업인 등 적지 않은 성공스토리를 찾을 수 있다.


지방정부 거버넌스의 역할

농촌개발 사업에서 주민 참여가 필수적인 가운데, 지방정부의 거버넌스가 주민 참여를 유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방정부에서 매칭펀드를 제공하여 시설 건립과 기기 구입에 협력하였고, 협동조합에 공동경작지를 지원하여 수익사업의 기회를 주었고, 각종 보조금 프로그램을 본 사업과 연계하여 참여농가에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직간접적인 혜택은 지역주민의 참여를 견인하기에 충분했다. 군(Municipality)과 면(Ward) 정부의 관심과 지원역량에 따라 마을별 사업 성과 및 지속가능성이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

사업지가 인도 국경도시와 경제생활권을 공유하고 있어 네팔측에도 국경무역의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네팔에 결코 유리하지는 않았다. 인도에서 저가의 상품이 유입되어 네팔측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사업지에서 새로운 소득작물 보급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지원과 함께 판로 확보에 대한 고민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사업지가 홍수 등의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는 점은 사업의 효과성과 사후관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취약한 농가는 홍수로 농지가 수몰되면 식량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자연재해가 불가항력적인 리스크라면 농업보험 가입을 장려하거나 저축을 유도함으로써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네팔은 농업협동조합이 발전하는 초기단계로 향후 양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한국의 농업협동조합 발전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양적 성장과정을 거쳐 점차 운영시스템이 체계화되었고, 그 배경에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었고, 거의 모든 농가가 회원이 되었다. 네팔의 경우도 초기에는 농업협동조합이 자생적으로 조직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제공하는 서비스 대상에서 소외되는 농가가 최소화되록 관리하고, 궁극적으로 질적 성장을 위한 제도 정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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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사업이 키르키스스탄의 아샤르    정신을 깨우다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지 성 태 교수

 

체제전환국의 비애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하며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소위 ‘스탄’ 국가들 중에서도 영토가 상대적으로 작고 소득수준도 낮은 편이다. 농업부문에서는 축산업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경종업에서는 밀, 보리, 옥수수 등의 곡물과 과일을 주로 생산한다. 구소련 시대에 각 연방국가가 각자의 산업 비교우위에 기초해 분업을 실시했으며, 키르기스스탄은 축산업을 바탕으로 다른 연방국가에 육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구소련 시대 축산업에만 집중하고 다른 산업의 기반은 전무하다시피 했던 키르기스스탄은 소련 붕괴 이후 다른 연방국가에 비해 그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의식주를 비롯해 모든 사회서비스를 국가에 의존해왔던 개개인은 경제활동 기회를 박탈당해 생계를 걱정해야 했고, 남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러시아를 비롯한 경제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주변국으로 이주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해외에서 번 돈은 모국으로 송금되에 가족의 생계 유지 및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였다. 송금된 외화의 규모가 국가 전체 재정의 약 30%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젊은 여성들도 타지나 해외로 나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청장년층이 빠져나간 농촌지역에는 아이, 여성, 노인 위주로 남게 되어 마을의 공동체의식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과일의 천국

키르기스스탄의 국토는 대부분 산악지대와 구릉지대로 구성되어 있고, 비쉬켁(Bishkek)과 오쉬(Osh)와 같이 규모가 큰 도시 주변으로 평야지대가 존재한다. 마을이 형성된 곳은 어김없이 가용할만한 수자원과 농경지가 있었다. 심지어 마을마다 적지 않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방사림 혹은 방풍림 역할을 하고, 농지 주변으로 줄지어선 미루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일종의 혼농임업(agroforestry) 실천모델이 되었다. 즉, 수자원과 식량 접근성이 양호한 곳에 도시와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평야지대에서는 주식의 원료인 밀과 보리, 사료작물인 옥수수와 조사료, 경제작물인 면화와 연초 등을 생산한다. 상대적으로 토질이 나쁜 지역에서는 사과, 체리, 살구, 자두 등의 과수를 식재하였다. 수박과 멜론(드냐) 등의 과채류, 호두 등 다양한 견과류도 키르기스탄의 특산품이다. 다만, 지역별 기후, 토질 등의 생산 여건의 차이, 생산기술의 차이, 품종의 차이로 품질의 표준화가 어려워 시장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아샤르(Ashar)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모두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다시 말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인간의 생존을 위해 타인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한국에도 이웃과 협력하는 두레, 품앗이 등의 전통이 있다. 과거 지역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으로 노동력이 유일한 상황에서 농가들은 이웃에서 ‘품’을 빌려 농사를 지었고 다시 ‘품’으로 이를 되갚아주었다. 또한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가가호호 노동력이나 금전, 실물을 제공하여 공동으로 대응하던 풍습이 있었다. 어쩌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같은 국난을 겪으면서 이러한 전통이 다소 약화되었고, 공동체의식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1970년대 ‘근면, 자조, 협동’의 기치 아래 추진된 새마을운동은 그동안 위축되었던 공동체의식을 발현되시키고 주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욕을 고취시키고 마을리더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아샤르는 한국의 두레와 유사한 커뮤니티 중심의 공동체의식이다. 구소련이 해체되어 키르기스스탄의 국가경제가 와해되면서 마을공동체도 약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즉, 마을에서 청장년층이 이탈하면서 공동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었고, ‘아샤르’ 정신을 발휘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최근 지역사회가 비교적 안정화되고 외지에 나갔던 마을구성원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마을기금이 조성되어 ‘아샤르’ 정신도 점차 회복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새마을운동과 아샤르의 접목

이러한 가운데 KOICA의 새마을기반 시범사업은 한국의 새마을운동 경험을 기반으로 키르기스스탄의 ‘아샤르’ 정신을 발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1단계 사업(기초환경)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마을의 최우선 인프라사업을 선정하여 추진하였고, 이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은 ‘아샤르’ 정신을 발휘하여 노동력을 자발적으로 제공하거나 노동력 제공이 어려운 경우 현금 혹은 현물로 이를 대체하였다. 여성들도 식사 제공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마을의 숙원사업을 주민들의 힘으로 완수했다는 성취감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에서도 그러했듯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시켰다. 이는 2단계(생산기반), 3단계(소득증대) 사업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1단계 사업의 성과와 2단계 제안사업을 기초로 30개의 마을을 기초마을과 자조마을로 구분하였다. 또한 2단계 사업의 성과와 3단계 제안사업을 기초로 9개의 자립마을을 선정하여 3단계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마을별로 경합을 유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업 실행기관에서는 가이드라인만을 제공하고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마을주민들의 주체역량(Ownership) 강화를 유도하였고, 더 나아가 마을공동체의 회복 및 사회적자본의 확장을 목표로 하였다.


성과의 확산

마을마다 사업 여건이 상이하기 때문에 그 성과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결국 주민들의 공동체의식, 마을대표의 리더십, 지방정부의 지원역량과 참여의지가 사업 성과를 좌우하였다. 마을기금 혹은 정부 예산을 사업비에 매칭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마을대표는 국내외 새마을연수 결과를 마을주민과 공유하였고, 우수사례를 다른 마을에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지방정부도 있었다. ‘아샤르’ 정신 회복은 사업의 성과 확산에도 도움이 되었다. 본 사업과 별개로 마을주민 주도 하에 도로를 개보수하거나 사방공사를 진행하였고, 지방정부의 도움을 받아 중앙정부 혹은 국제기구의 지원사업을 신청하여 채택되는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사업을 계기로 마을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한 마을이 있는가 하면, 본 사업의 효과를 보고 이웃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도 있었다.

 

고령화와 세대 차이

본 사업을 통해 커뮤니티 단위에서 ‘아샤르’ 정신의 발현으로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이는 향후 키르기스스탄 농촌발전을 위한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지역소멸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도 대두된 것처럼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농촌고령화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세대간 의식의 차이도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보인다. 즉, 공산주의체제를 겪은 구세대와 자본주의체제에서만 살아온 신세대 간의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스텝지역에서도 끊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유목생활과 농경활동을 병행하며 살아왔고 공동체의식이 생존을 위한 또다른 원동력이었기에 ‘아샤르’의 힘을 다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끝/